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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의밤 · 7화

부서진 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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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은 배가 뜬 뒤에야 풀었다.

다섯 꾸러미였다. 어젯밤에는 넉넉해 보였는데, 막상 내 앞에 놓으니 하나가 작았다.

우리가 찾으러 가는 사람은 윤석이었다. 집에 돌아오기로 한 날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는 물새호의 선원. 아내가 꿰맨 자루만 먼저 항구에 도착했다.

“벌써 다른 사람 밥까지 세는 거예요?”

자청비가 제 꾸러미를 무릎 가까이 당겼다.

“아닙니다. 다섯 개가 맞나 봤습니다.”

“맞아요. 여섯 번째는 없어요.”

이순신이 웃지도 않고 자기 밥에서 한 덩이를 떼어 주었다. 나는 얼른 손을 저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돌려주게.”

이미 받은 밥을 입에 넣은 뒤였다.

강바람에 밥의 김이 금세 흩어졌다. 바리데기는 물병을 건넸고, 정도전은 젖지 않게 싼 종이를 옆으로 옮겼다. 좁은 배 안에서 밥 먹을 자리를 만드는 데도 서로 조금씩 움직여야 했다.

자청비의 큰 짐은 항구에 두고 왔다. 그녀는 오늘 전달될 심부름편에 보관을 더 맡아 달라는 말과 비용을 함께 보냈다고 했다. 지금 무릎 옆에 있는 것은 작은 바구니뿐이었다.

“씨앗은 안 가져갑니까?”

“전부 데려가서 물에 빠뜨리게요? 살펴볼 것만 조금 챙겼어요.”

그녀가 내 손을 봤다.

“그 손부터 물에 안 닿게 조심해요.”

붕대 아래가 욱신거렸다. 나는 밥을 싸 왔던 천을 접고, 손바닥을 누르던 붕대 매듭을 옆으로 돌렸다.

정오가 되기 전에 배에서 내렸다. 사공은 앞으로 이어지는 둑길을 짚었다. 오늘은 물을 따라 북쪽으로 걷고, 내일 낮쯤 경계 근처 군영에 닿을 거라고 했다.

이순신은 길보다 먼저 구름과 물살을 살폈다.

“늦기 전에 쉬는 곳을 정하세.”

“벌써요?”

“늦은 다음 정하면 늦지.”

반박할 데가 없는 말은 어쩐지 얄미웠다.


수레가 내려앉은 것은 우리가 둑 아래로 접어들 때였다.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앞서가던 남자가 수레 손잡이를 놓치고 허공에 손을 뻗었다. 두 사람이 끌던 수레의 오른쪽 바퀴가 꺼진 땅에 박혀 있었다.

뒤에서 밀던 여자가 바퀴를 받치려고 허리를 숙였다.

“손 빼십시오!”

내가 달려가는 동안 둑 가장자리가 한 뼘쯤 떨어져 나갔다.

여자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수레는 기울어진 채 멎었다. 그 아래로 갈색 물이 흘렀다. 물살은 얕아 보였지만, 무너진 흙덩이가 닿자마자 풀어지는 속도가 빨랐다.

두 사람과 우리 사이에는 세 걸음 남짓한 틈이 생겼다.

남자가 수레 손잡이를 붙들고 버텼다.

“한 번만 당기면 됩니다. 이쪽을 좀 잡아 주시면…….”

나는 손잡이를 보다가 발밑을 봤다. 바퀴 아래만 꺼진 것이 아니었다. 남자가 선 땅에도 가느다란 금이 들어가고 있었다.

“수레는 놓으십시오.”

“여기 오늘 팔 것이 다 있습니다.”

덮개 밑에 솥과 그릇, 옷감 꾸러미가 보였다. 여자는 벌써 기어서 수레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다시 말하려는데 이순신이 내 어깨를 잡았다.

“길동. 사람 둘을 건넬 자리를 보게.”

그는 남자에게 소리를 질러 손잡이를 놓게 하려 하지 않았다. 먼저 우리 쪽 나무에 줄을 걸었다. 정도전이 길을 지나던 짐꾼 둘을 불렀다.

“잠깐만 힘을 빌려주시오. 사람을 당겨야 하오.”

나는 내 옆에 분신 하나를 세우고, 나무에 건 줄 끝을 허리에 묶었다. 녀석이 매듭을 살피고 남은 줄을 받아 들었다.

“저쪽이냐?”

“내가 건넌다. 너는 여기서 받아.”

“아픈 손은 너도 있잖아.”

“그래서 줄을 허리에 맸다.”

녀석이 매듭을 한 번 더 당겼다. 나무를 돌아온 줄은 분신과 짐꾼들의 손에 넘어갔다. 나는 단단한 자리를 골라 발끝을 디뎠다.

뛸 수 있는 거리였다. 문제는 내려앉을 곳이었다.

나는 남자 옆의 흙이 아니라, 길을 가로질러 드러난 굵은 뿌리 쪽을 택했다. 몸을 던지는 순간 등 쪽 상처가 당겼다. 이를 악물고 착지했다.

발아래 흙이 우수수 흘러내렸다.

남자가 내 팔을 잡으려 했다. 내가 먼저 그의 어깨를 밀어 수레에서 떼었다.

“제 얼굴 보십시오. 지금 사람 둘이 건너야 합니다.”

그가 수레와 나를 번갈아 봤다.

“저것 없이 가면…….”

남자의 손이 손잡이에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그 발뒤꿈치에서 흙이 쏟아졌다.

“건넌 뒤에 같이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안 됩니다.”


여자의 발목이 돌아가 있었다.

일으켜 세우자 짧은 비명이 났다. 나는 어깨를 내주고 허리의 줄을 풀어 그녀에게 둘렀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내 매듭을 도왔다.

건너편에서 자청비가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잡은 것은 풀 한 줌이었다. 비탈에서 반쯤 뽑힌 풀. 손가락 사이로 흙이 떨어졌다.

“저 큰 돌 둘, 이쪽으로 가져와 줘요.”

짐꾼 하나가 돌을 굴렸다. 자청비는 뿌리를 놓지 않은 채 비탈 아래를 가리켰다.

“그냥 쌓으면 같이 무너져요. 드러난 뿌리 밑에 받쳐요.”

나는 여자를 들어 올리다가 멎었다.

발아래 뿌리가 움직였다.

뱀처럼 솟아오른 것은 아니었다. 끊어질 듯 늘어졌던 잔뿌리들이 젖은 흙을 향해 파고들었다. 갈라진 틈 안에서 흰 가닥이 겹치더니, 흘러내리던 흙이 그물에 걸린 것처럼 멈췄다.

“이게…….”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청비가 외쳤다.

“돌 더요! 이 사람들 건널 때까지만 버텨야 해요!”

놀라서 쳐다볼 시간까지 벌어 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자를 안아 틈 가장자리로 옮겼다. 건너편 분신이 배를 깔고 누워 두 팔을 뻗었다. 나는 여자의 허리를 받친 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앞에 있는 제 손만 잡으십시오!”

분신도 같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여자의 두 손목이 녀석의 손에 잡혔다.

“지금, 함께 당기시오!”

이순신의 소리에 짐꾼들이 줄을 당겼다. 여자의 몸이 틈 위로 들리는 동안, 나는 다친 다리가 땅 끝에 걸리지 않게 받쳤다.

바리데기가 길 위에 천을 깔고 그녀를 받았다.

첫 사람이 건넜다.

분신이 여자의 허리에서 푼 줄을 던졌다. 나는 받아 내 허리에 묶고 남자를 돌아봤다.

남자가 돌아섰다. 수레 위에 걸린 작은 주머니를 보았다. 그 순간 바퀴 밑의 흙이 또 떨어졌다.

나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건 제가 꺼낼 수 있습니다.”

주머니는 손잡이 끝에 걸려 있었다. 팔만 뻗으면 되는 거리였다. 나는 줄에 몸을 맡긴 채 그것을 낚아챘다. 뒤쪽 솥이 굴러 떨어지면서 수레가 덜컥 움직였다.

남자가 이번에는 스스로 내 쪽으로 왔다.

남자가 내 어깨를 짚고 무릎을 굽혔다. 내가 등을 밀자 그가 틈을 뛰어넘었다. 착지하며 비틀거리는 그를 분신이 붙잡아 길 안쪽으로 당겼다. 내가 뒤따라 뛸 때, 딛고 있던 뿌리 아래가 꺼졌다. 허리의 줄이 나를 잡아챘다. 숨이 턱 막혔다.

분신이 내 깃을 움켜쥐었다.

“받았다.”

“말 말고 당겨.”

“당기고 있다.”

나는 무릎으로 길을 긁으며 올라왔다. 수레가 옆으로 뒤집혔다. 흙탕물에 솥 하나가 잠겼다가 떠올랐다. 아무도 그것을 잡으러 내려가지 않았다.


자청비는 손을 펴는 데 잠깐 애를 먹었다.

나는 물을 건넸다. 그녀는 먼저 손가락에 묻은 흙을 조금 씻고 나서 마셨다.

“아까 뿌리가 움직였습니다.”

“봤잖아요.”

“봄에 밭 하나쯤은 금방 만드시겠습니다.”

“그 밭에 물은 누가 대고, 돌은 누가 걷는데요?”

나는 우리 옆에서 땀을 닦는 짐꾼들을 봤다.

자청비가 물병을 내게 돌려주었다.

“살아 있는 것 붙잡고 조금 버틴 거예요. 없는 뿌리까지 생기는 건 아니고.”

그제야 비탈의 풀이 보였다. 조금 전보다 잎이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물병에 남은 물을 그 아래에 부었다.

남자는 되찾은 주머니를 열었다. 동전 몇 개와 접힌 천이 나왔다. 여자가 그걸 보고 남자의 등을 한 번 쳤다.

“솥 붙잡다가 당신까지 가라앉으면, 나는 뭘 끌고 돌아가라고.”

혼내는 목소리가 끝에서 떨렸다. 남자가 대꾸하지 않고 주머니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정도전이 짐꾼들과 돌아가는 길을 의논했다. 발목을 다친 사람은 둘이 번갈아 부축하고, 다음 쉼터에서 수레를 빌리기로 했다. 이순신은 무너진 길 앞에 긴 나뭇가지를 가로놓았다. 뒤따르는 사람이 멀리서 볼 수 있게 천도 묶었다.

분신을 거두자 두 다리가 무거워졌다. 나는 길가에 앉아 붕대를 풀었다. 피가 조금 배어 있었다.

“손을 쓰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남을 잡아 올릴 때는 손을 쓰지.”

이순신이 새 천을 내밀었다.

“다음엔 꼭 말로 잡아 올리겠습니다.”

그가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그 재주가 생기면 내게도 알려 주게.”

나는 웃다가 아픈 등을 움츠렸다. 밥 먹을 때뿐 아니라 웃는 데도 등이 쓰인다는 사실을 오늘 여러 번 배우고 있었다.

여자가 떠나기 전에 내 이름을 물었다.

“홍길동입니다.”

“다음에 만나면 밥 한 끼는 해드릴게요. 솥부터 다시 사야겠지만.”

“그럼 솥을 사셨는지 확인하러 가겠습니다.”

여자가 웃었다. 나는 그들이 사는 마을 이름을 물어 장영실이 준 종이 구석에 적었다. 사람을 보내고 나서 갈 곳 하나가 더 생겼다.

두 사람이 짐꾼들과 떠난 뒤, 우리는 남은 밥을 나눠 먹었다. 나는 종이 구석의 마을 이름을 한 번 더 봤다. 다음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아야겠다.

해가 기울 무렵, 갈대밭 너머에서 흰 것이 솟았다.

처음에는 큰 새의 날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펄럭이다가 팽팽해졌다. 위에 달린 가는 줄까지 보였다.

돛이었다.

아래쪽에 푸른 천을 덧댄 흰 돛.

“저기입니다.”

내가 일어서자 이순신도 같은 쪽을 봤다. 돛은 갈대 너머로 느리게 움직였다. 가까운 물길은 우리가 선 둑 아래뿐이었다. 돛이 간 쪽에는 마른 땅이 이어져 있었다.

자청비가 바구니 안에서 접은 자루를 꺼내려다 손을 멈췄다.

“물새호일까요?”

나는 대답하는 대신 장영실이 준 종이를 꺼냈다. 이순신이 돛이 있던 방향과 해가 진 쪽을 짚어 주었다. 내가 종이에 선을 그리는 동안 흰 돛이 천천히 낮아졌다.

바람에 쓰러지는 모양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언덕 아래로 배가 내려가듯, 돛대 끝까지 사라졌다.

나는 빈 갈대밭을 한동안 보고 있었다.

윤석 씨.

집으로 오는 길이 아니라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7화 끝

초기 원고 기준일 최종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