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에는 배 못 댑니다.”
동쪽 나루의 사공이 말뚝을 가리켰다.
맞은편 갈대밭에 나룻배 그림을 새긴 판이 서 있었다. 바로 밑에는 배 한 척 들어갈 만한 빈자리가 보였다.
“그럼 저건 왜 세워 뒀습니까?”
“물이 빠지기 전 자리요. 지금 대면 배 바닥이 먼저 닿소. 오늘은 조금 위로 올라가야 하오.”
“어제부터 막힌 것과는 다른 일입니까?”
“여기는 물이 빠질 때마다 그래요.”
이제 나무판 하나만 비뚤어져 있어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바리는 맞은편 둑 위를 보고 있었다.
“그럼 기다리는 분도 위쪽으로 와야겠네요.”
사공이 끄덕였다.
“배가 들어가는 걸 보면 따라올 겁니다. 둑길이 이어져 있소.”
이순신은 바로 배를 밀지 않았다. 사공과 함께 나루 아래까지 내려가 떠가는 나뭇잎과 빈 배의 움직임을 살폈다.
나는 갈대가 끊긴 지점에 섰다. 여기서는 어제 다리가 보였던 바위가 보이지 않았다.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마을의 지붕이 보였다.
그곳에 여자가 서 있었다.
작은 소쿠리를 옆에 내려놓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오셨네요.”
바리가 말했다.
“따님입니까?”
“그런 것 같아요. 만나서 확인해야죠.”
잠시 뒤 사공과 바리가 먼저 건넜다. 이순신은 이쪽에서 배가 움직이는 방향을 지켜봤다.
바리가 내릴 때 배가 조금 흔들렸다. 나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섰다가 멈췄다.
그녀는 사공의 팔을 잡고 발을 옮겼다. 아무 일도 없었다.
바리는 둑길을 따라온 여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이더니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없었다.
바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맞아요. 약속 쪽지와 어르신이 말씀하신 집을 확인했어요.”
바리가 뭍으로 올라왔다.
“아침부터 기다렸대요. 어머니가 늦으면 자기가 넘어오려고 했고요.”
이순신이 사공에게 물었다.
“건널 때 바깥쪽 흐름이 이리로 밀렸소?”
“없었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느린 정도요.”
그는 물을 한 번 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건넙시다. 오늘 확인한 이쪽 나루만 쓰고, 물이 바뀌면 다시 살펴야겠소.”
“어르신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짐은 나중에 같이 옮기지요.”
내가 말하자 바리는 사공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식당으로 서둘러 걸었다.
복례는 신을 신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주인이 밥부터 먹으라며 말리는 중이었다. 국에는 이미 얇게 기름이 굳어 있었다.
“따님이 오셨답니다.”
노인이 숟가락을 놓았다.
나는 그릇을 치우지 않았다.
“기다리고 계세요. 식사하고 가셔도 됩니다.”
“안 가고 기다린대?”
“네. 바리가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노인이 밥을 크게 떴다. 급하게 삼키다가 기침을 했다.
나는 물잔을 앞에 놓았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된다고 다시 말했다.
나루에 도착했을 때 정도전은 담당 관리와 통행 기록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름 아래에 어제와 다른 목적지가 적혀 있었다.
복례는 글씨 대신 맞은편을 봤다.
딸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기 있네.”
보따리를 쥔 손이 내 팔을 꽉 붙들었다.
나는 노인이 배에 앉을 때까지 팔을 내줬다. 바리는 반대편에 앉아 보따리를 무릎에 올렸다.
사공이 배를 밀었다.
나는 부두 끝에서 두 사람을 지켜봤다. 물이 반짝여 잠깐 얼굴이 안 보였다.
맞은편에 배가 닿자 여자가 내려왔다. 복례는 배 안에서 일어나려다가 바리에게 붙들렸다.
딸이 먼저 다가왔다.
얼굴을 마주하자 두 사람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노인이 딸의 볼을 만졌다.
나는 그다음 말까지 듣지는 못했다.
바리가 노인의 팔을 딸에게 건넸다. 보따리도 넘겨주고 물러섰다.
돌아오는 배에는 바리와 사공만 탔다.
나는 바리의 짐을 받아 들었다.
어제보다 가벼웠다.
“집까지 같이 가지 않아도 됩니까?”
“따님이 데려가실 거예요.”
바리는 빈 손으로 옷자락을 폈다. 아직 무엇을 들어야 할 것처럼 손가락이 구부러져 있었다.
“어르신이 밥 먹고 가라고 하셨어요.”
“같이 가서 드시지 않고요?”
“먼저 두 분이 이야기하시라고요. 나중에 오면 꼭 들르기로 했어요.”
그녀는 맞은편을 한 번 더 봤다.
두 사람은 둑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딸은 어머니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정도전은 항구로 돌아와 바뀐 종이를 쉼터 담당에게 건넸다.
이번에는 출신지와 가려는 곳이 다른 칸이었다. 누구에게 인계했는지, 못 갔을 때 어디서 기다릴지도 적게 했다.
“서쪽으로 간 분들도 처음 명단과 맞춰 보시오. 다르게 적힌 사람이 있으면 다음 배를 정하기 전에 물어보고.”
“그쪽 담당에게 오늘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거기서 고칠 수 없는 일은 내게 보내시오. 구호 비용도 함께.”
그는 서명을 마친 뒤 한 장을 따로 챙겼다.
내가 물었다.
“이제 누구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겁니까?”
“그곳에서 받아 주는지, 길이 열려 있는지도 확인해야지.”
“또 기다려야 하네요.”
“기다리는 곳부터 마련해야 하고.”
그는 쓰다 남은 종이들을 가지런히 모았다.
“두 분만 보내 놓고 끝낼 생각은 없소.”
나는 어제처럼 말대꾸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까지 옮겨 줄 배와 방을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는 말했다.
“다음에는 적기 전에 물어보십시오.”
정도전의 손이 멈췄다.
내가 너무 나갔나 싶었을 때, 그가 대답했다.
“그래야겠소.”
두만은 약속한 집에서 문을 달고 있었다.
확인하러 간 관리가 돌아오며 손에 떡을 한 조각씩 나눠 줬다. 집 주인이 가져가라 했다고 했다.
바리는 떡을 바로 먹었다.
자청비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어제 옮긴 씨앗은 가게에서 말리는 중이었다. 오늘은 부두에 남은 것까지 옮길 참이었다.
“이제 저것까지 옮기면 돼요.”
그녀가 바구니 두 개를 가리켰다. 하나에는 빈 자루와 깔개가, 다른 하나에는 남길 씨앗이 있었다.
나는 손바닥의 붕대를 고쳐 감았다. 마찰만 피하면 가벼운 짐은 들 수 있었다.
곁의 빈자리에 분신을 하나 세웠다.
“씨앗 든 바구니를 가게로 옮겨. 문 안쪽 선반에 내려놓고, 주인에게 어디 뒀는지 알려 줘.”
녀석이 바구니 양옆을 안아 들었다.
바리는 나와 분신을 번갈아 봤다. 내가 빈 자루 쪽을 집어 들자 물었다.
“같이 피곤해지는 건가요?”
“예. 제가 쉬면서 부려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분신이 먼저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잠시 뒤 녀석이 빈 손으로 나왔다.
“선반에 뒀어. 주인도 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분신을 거뒀다. 어깨가 조금 무거워졌다. 씨앗 바구니는 가게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자청비는 직접 들어가 한 번 더 살폈다. 바구니를 덮은 천의 한쪽을 걷어 바람이 통하게 했다.
“맡기는 동안 뒤집는 건 하루에 한 번이면 돼요. 젖으면 바로 알려 주시고요.”
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모레 값을 다시 정하는 거지?”
“그때 못 돌아오면 항구 담당을 통해 사람을 보낼게요. 그냥 두고 가는 건 아니에요.”
그녀가 값을 치르고 나왔다.
나는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윤석 씨를 찾아야죠. 씨앗이 온 길도요.”
나는 발을 멈췄다.
그녀는 확인용 씨앗을 싼 작은 천 주머니를 꺼내 보였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요. 맡길 곳이 없어서 못 움직였지.”
오후 늦게 고려의 땅에서 출발한 배가 정해진 길목을 거쳐 항구 바깥에 닻을 내렸다.
막아 둔 바위 쪽을 피하도록 안내한 뒤, 작은 배가 서류와 승객을 따로 옮겼다. 나는 부두에서 푸른 천을 찾았다.
그 배의 돛은 누렇게 바랜 흰색이었다.
물새호가 아니었다.
교환소에서 보낸 서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자청비와 함께 달려갔다. 정도전은 종이를 펼치기 전에 배가 언제 어디서 출발했는지부터 물었다.
사흘 전 아침이었다. 길목마다 사람을 바꿔 가며 밤낮으로 왔다고 했다.
그 배는 올 수 있는 시간에 왔다.
사내는 품에서 기름 먹인 천으로 싼 종이를 꺼내 펼쳤다.
교환소의 물품 인계 목록이었다. 정도전이 한 줄을 짚었다.
물새호. 윤석. 시험 삼아 먼저 보내는 종자 한 자루.
자루 속에서 꺼냈던 종이와 같은 날짜였다. 이제는 사흘 전이었다.
“목록만 적은 겁니까, 실제로 보낸 겁니까?”
정도전이 물었다.
“배에 오른 것까지 보고 적은 거요. 내 앞에서 자루를 받았소.”
“배가 나가는 것도 봤소?”
“봤소. 우리보다 먼저 떠났으니까.”
자청비가 가게에서 가져온 빈 자루의 안감을 펼쳤다. 사내는 반달 모양의 푸른 바느질을 보자 손을 뻗었다.
“그 짐인데. 사람이 와 있소?”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날짜 적힌 종이 두 장을 봤다.
윤석은 내가 바다를 맴돌던 날 아침, 고려의 교환소를 떠났다. 자루는 그날 밤 이미 우리 앞의 배에 있었다.
정상적인 길로는 올 수 없는 시간이었다.
자청비가 물었다.
“다른 배에 넘긴다는 말은 없었나요?”
“없었소. 집에 가는 길에 직접 갖다준다 했지.”
그녀는 자루를 접었다. 세 번쯤 손바닥으로 눌러도 같은 자리가 들떴다.
이순신이 사내에게 마지막으로 본 방향과 함께 나간 배를 물었다. 정도전은 답을 적고 항구 수색 담당을 불렀다.
“바깥 수색은 계속하되 저 바위 틈으로 들어가지는 마시오. 물새호가 다른 나루에 닿았는지도 확인하고.”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이제 윤석의 아내에게는 남편이 정말 출발했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다.
돌아올 수 있다는 말까지는 아직 못 했다.
저녁에는 같은 식당에 모였다.
이순신이 항로도를 폈다. 바닷길 옆으로 육지의 길이 가느다랗게 이어져 있었다.
“항구에서는 바깥 수색을 맡고 있소. 우리는 육로로 접경 나루까지 가 보는 게 어떻겠소? 길이 막힌 곳과 배를 본 사람을 함께 찾을 수 있소.”
“얼마나 걸립니까?”
내가 물었다.
“고려 쪽 경계까지 작은 배와 육로로 이틀이오. 중간에 멈추면 더 걸리고.”
장영실은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바위틈의 다리가 보였다 사라진 시간과 물 높이를 더 살펴야 했다.
“본 걸 그림으로 남겨 주십시오. 못 본 건 빈칸으로 두시고요.”
나는 그가 내민 종이를 받았다.
정도전은 항구의 후속 업무를 맡을 관리와 보고할 곳을 정해 뒀다고 했다. 자신도 길이 막힌 현장을 확인하고 오겠다고 했다.
“열린 길이라고 써 놓고, 실제로는 못 건너는 일이 더 있는지 봐야겠소.”
자청비는 말없이 자기 바구니를 의자 밑으로 당겼다.
“저는 준비됐어요.”
나는 바리를 봤다.
이번에는 먼저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바리가 식탁 위의 지도를 가까이 당겼다.
“저도 갈게요. 제가 두 분을 모셔 온 길이 저기와 이어져 있어요. 지금도 지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쉼터 일은 괜찮습니까?”
“담당하는 분께 말씀드렸어요. 두 분이 어디로 가셨는지도 전했고요.”
바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오늘은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 보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순신이 내 쪽을 봤다.
“길동은?”
“저도 갑니다. 대신 줄 잡는 일 말고 다른 것도 시켜 주십시오.”
“밥할 줄 아나?”
나는 대답하기 전에 자청비를 봤다. 그녀는 모르는 척 물을 마셨다.
“먹을 줄은 압니다.”
이순신의 입가가 조금 풀렸다.
“그럼 물부터 길어 오게.”
밤이 되자 나는 빨아 말린 헝겊을 들고 부두로 갔다.
등불지기가 빌려준 것이었다. 마르면 기둥에 걸어 두라던 말이 이제야 생각났다.
처음 그를 만난 자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헝겊이 바닥에 닿지 않게 접어 기둥에 걸었다.
돌아가는 길에 식당 주인이 나를 불렀다.
“내일 아침에 밥을 싸 달라고 했지? 몇 사람 몫이오?”
문 안에는 함께 길을 나설 네 사람이 있었다.
자청비가 여비를 세고, 정도전은 길에서 보여 줄 종이를 접었다. 바리는 자기 짐에서 필요 없는 것을 골라냈다. 이순신은 내일 쓸 작은 배의 사공과 출발 시간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다섯 사람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