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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의밤 · 24화

먼저 떠나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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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보다 솥이 먼저 떠났다.

자청비는 마지막 밥을 다 퍼 준 뒤 솥을 식혀 배에 실었다. 어제까지 사람을 부르던 주방 안에 빈 화덕이 남았다.

나는 고친 문을 닫았다. 바람에 다시 열리지 않도록 짧은 끈을 걸었다. 잠글 물건이 별로 남지 않은 집이었다.

연과 바리데기가 마지막으로 낮은 집들을 돌아 나왔다. 아무도 안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언덕 위 거처와 안전한 선착장에 주민들이 옮겨 갔고, 다친 사람을 맡을 이도 정해졌다.

물가에서 이순신이 사공의 말을 확인했다.

“마지막 짐까지 내렸습니다.”

그 말이 나온 뒤에야 우리 배에 짐을 실었다.

사공이 빈 물가에서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 우리가 떠날 차례였다.


연은 아버지의 짐을 배에 싣지 않았다.

그녀가 들고 온 것은 상류의 작업자들에게 나눠 줄 식량과 명단이었다. 개인 물건은 작은 주머니에 넣어 자기 허리에 묶었다.

“같이 가실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 여기 있을 거예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가 연을 불렀다. 새 잠자리에 물을 어디에 두었는지 묻는 말이었다. 그녀는 손으로 방향을 알려 주고 나를 봤다.

“아버지가 없다고 여기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나루지기를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하려다 멈췄다. 우리가 가서 누구를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아직 몰랐다.

연이 먼저 말했다.

“막아 주세요. 다치는 분이 더 생기지 않게.”

그녀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도 살아서 돌아오시면 좋겠어요. 그래도 하신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은 두 손을 허리 앞에 모았다. 내가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려고 가겠습니다.”

내가 답했다.

연은 바리데기와 짧게 손을 잡았다. 자청비에게는 식량이 어디에 실렸는지 알려 주었다. 우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지만, 끝내 잘 다녀오라는 말만 했다.

나는 배에 오르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봤다. 연은 아직 물가에 서 있었다.


루크는 물가에서 오래된 표지를 분리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나로 묶여 있던 줄들이 각자 다른 말뚝에 걸렸다. 현지 일꾼 둘이 그의 설명을 듣고 차례로 풀었다.

나는 배에 오르기 전 잠깐 들렀다.

“저희가 돌아오기 전에 다 고쳐 놓으시겠습니까?”

“다라는 말은 대개 수선비에 안 들어 있어요.”

그가 웃었다가 덧붙였다.

“지금 맡은 길은 지켜 놓겠습니다. 주민이 지나는 쪽부터.”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내 칼집을 봤다. 금 간 끝은 천으로 묶여 있었지만, 손에 잡히는 부분까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걸로 계속 두드리게요?”

“가능하면 맞붙는 일부터 줄여 보겠습니다.”

루크가 짧은 가죽끈을 건넸다. 내가 칼집에 감아 둔 천은 끝이 풀려 있었다. 그는 금이 더 벌어지지 않게 그 위를 한 번 더 묶으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끈을 감았다. 그가 매듭을 봐주었다.

“못 버티면 그냥 버려요. 칼집보다 손이 비쌉니다.”

“수선값 기준입니까?”

“그건 말하면 서운할 텐데.”

우리는 잠깐 웃었다. 그는 다시 말뚝 쪽으로 돌아갔다.


배가 떠날 때 나루는 조용했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는 밥을 달라는 소리와 짐을 옮기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오늘은 기둥에 매단 빈 등불들이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물가의 판자를 끝까지 봤다. 노인이 앉던 자리였다. 이제 노인은 언덕 위에서 자기 그릇을 풀고 있을 것이다.

큰 배 뒤에는 빈 작은 배 한 척이 줄에 묶여 따라왔다. 상류에 닿으면 좁은 물가에 붙일 때 쓸 배였다. 이순신은 사공과 그 줄의 길이를 확인했다.

우리 다섯만 가는 것은 아니었다. 상류의 길을 아는 현지 작업자와 사공들, 무기를 든 호위들과 맞서 줄 사람들도 함께했다. 구조하러 가서 모든 사람이 싸움에 묶이지 않도록 역할을 나눴다.

나는 그 얼굴들을 차례로 봤다.

새로 합류한 이들은 이름이 알려진 영웅이 아니었다. 저 위에 함께 일했던 사람이 있거나, 자기 마을로 물이 내려올 것을 알기 때문에 배에 올랐다.

작업자 하나가 내 옆에 앉았다.

“수문 안쪽 길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닫히기 전에 일했던 자리라.”

그는 동쪽과 서쪽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불러 주었다. 도면 위의 좁은 선이 실제로는 허리 높이 발판이라는 것, 거기 붙은 사다리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도 호위들이 어디서 막을지는 몰랐다. 나는 발판 위에 내 얼굴을 그리려다 손을 멈췄다. 저들도 내가 둘이 되는 것을 안다. 똑같이 나눠 들어가면 이번에는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오후에는 밥을 나눠 먹었다.

처음 다섯 사람 몫을 싸 왔을 때보다 꾸러미가 많았다. 자청비는 뒤쪽 사공의 몫부터 따로 뒀다. 노를 잡고 있는 사람이 자기 차례를 놓치지 않도록 했다.

나는 먼저 받은 밥을 바로 먹지 않고 옆에 놓았다. 자청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요. 이번엔 안 배고파요?”

“조금 있습니다. 걱정이.”

내 대답에 그녀가 곁에 앉았다.

“배고픈 것하고 같이 있어도 돼요. 먹어요.”

나는 밥을 한 숟갈 떠먹고 말했다.

“다 떨어져서 일해야 하지 않습니까. 누가 막히면 제가 알 수도 없고.”

자청비는 내 뒤를 가리켰다. 이순신이 사공과 바람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신호를 정했잖아요. 제 쪽은 땅을 아는 사람도 있어요.”

“제가 빨리 못 가면요?”

“그럼 우리가 좀 더 버틸 일을 찾겠죠. 혼자만 고민하지 말고.”

그녀는 밥을 한입 먹었다.

“저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는 건 아니에요.”

자청비는 밥그릇을 무릎에 놓고 손가락을 주물렀다. 부서진 둑에서 뿌리를 붙잡았던 손이었다. 나는 더 묻지 않고 물통을 가까이 밀어 줬다.

바리데기는 우리 말을 듣다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지막 사람이 늦으면 신호가 늦을 거예요. 늦는다고 우리가 안 움직이는 건 아닐 테니, 조금 믿어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릎에 감은 천을 손끝으로 눌러 보고 나를 향해 웃었다.

“저희도 길동 씨가 안 보이는 동안 믿고 갈게요. 그러니 신호 보기 전에 줄부터 끊지는 말아요.”

나는 밥을 한입 더 먹었다. 바리데기가 내가 남겨 둔 반찬을 집어 자기 그릇에 놓았다.

“안 드시는 줄 알았어요.”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다음 것은 미리 말씀하세요.”

자청비가 웃었다. 나는 뒤늦게 빈 젓가락을 들었다. 내 걱정이 끝날 때까지 밥상도 기다려 주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배는 바람을 피할 곳에 잠시 댔다.

사공들이 번갈아 쉬고, 남은 사람은 물과 줄을 살폈다. 밤에도 모든 사람이 깨어 있을 수는 없었다. 이순신은 쉴 사람을 정하고 자기도 차례가 되자 누웠다.

나는 쉽게 눈을 감지 못했다.

정도전이 내 옆에 앉아 종이를 접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물었다.

“내일 할 일을 다시 세고 있소?”

“예.”

“세다가 하나 더 생겼소?”

“아닙니다.”

“그럼 잠깐 그만 세어도 되겠구려.”

나는 웃었다.

그는 종이를 짐 안에 넣고 누웠다. 자기도 걱정이 없어서 눕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까지 내일 할 일의 일부였다.

바리데기에게 물병을 건네고 함께 붕대를 갈았다. 그녀는 무릎을, 나는 손바닥을 감았다. 서로 다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일 일을 맡겨야 했다.

나는 낮에 접었던 도면을 다시 꺼냈다. 얼굴마다 입구를 지키러 나오게 할 수는 있다. 그다음 남은 호위까지 움직이게 해야 작업자들이 나올 길이 열린다.

몸을 눕히자 배 밑에서 물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 이곳으로 오던 밤에도 배가 흔들렸다. 그때는 누구와 어디로 가는지도 제대로 몰랐다. 지금도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래도 내일 누구를 기다려야 하는지는 알았다.

눈을 감기 전에 이순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차례에는 내가 일어나겠네. 자네는 더 자게.”

나는 누운 채 대답했다. 펼쳐 놓은 종이는 바로 옆에 두었다.

책임자는 내 얼굴이 둘이 되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 얼굴을 따라가지 말라고 부하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종이 구석에 빈 배를 그렸다. 얼굴을 쫓지 않아도, 배는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야 했다.

“내일 미끼로 쓸 배가 필요합니다.”

이순신이 뒤쪽을 가리켰다. 우리가 끌고 가는 작은 배가 달빛 아래 흔들렸다.

“사람은?”

“태우지 않겠습니다.”

그는 나를 잠깐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 배는 내가 보내지.”

나는 누웠다. 책임자가 눈앞의 나를 놓치지 않는 동안, 다른 길을 열 수 있을까. 잠이 들 때까지 빈 배의 깃발이 머릿속에서 펄럭였다.

2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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