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수문으로 들어간 배에는 아무도 없었다.
작은 돛 위에 깃발이 펄럭였다. 사공이 걸어 놓은 줄을 풀자 빈 배가 물살을 따라 비스듬히 나아갔다. 이순신은 낮은 바위 뒤에서 그 배의 방향을 끝까지 봤다.
하루를 꼬박 올라와 본 수문에 닿은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우리는 바로 배를 들이밀지 않고 바위 뒤에 댔다. 작업자가 그림과 실제 발판을 맞춰 주었다.
가운데 높은 조종실로 가는 길 하나, 서쪽 둑 아래의 작업길 하나, 동쪽 짐을 올리는 비탈 하나.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하지만 모두 수문 안으로 들어갔다.
조종실 아래에는 굵은 버팀줄이 있었다. 길이 좁아질 때 받침을 버티게 하는 줄이라고 했다. 걸쇠와 발판의 위치도 그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벽에 달린 물시계의 통도 보였다. 가동이 시작할 때 저 눈금을 봐야 했다.
작업자는 길이 이어지는 모양을 막대기로 흙에 그렸다. 내가 바라본 방향과 그가 설명하는 방향이 반대라 한 번 헷갈렸다. 나는 조종실을 등에 두지 말고, 우리가 선 곳을 기준으로 다시 그려 달라고 했다.
그는 막대기를 돌려 쥐고 선을 고쳤다.
“서쪽에는 낮은 문이 있습니다. 물을 보겠다고 밖으로 돌아가면 막혀요.”
나는 두 분신에게 전할 말을 머릿속에 남겼다. 눈앞에서 갈 수 있는 길을 잘못 알아듣는다면, 몸이 셋이어도 잘못된 곳으로 더 빨리 갈 뿐이었다.
나는 그쪽을 눈에 익힌 뒤 호위들을 봤다.
여섯이었다. 창고에서 본 책임자가 중앙에 서 있었다. 그는 빈 배를 보고 옆의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
완전히 속은 것은 아니었다. 배를 잡으러 가면서도 수문 입구의 사람은 남겨 뒀다.
나는 왼쪽에 분신 하나를 세웠다. 오른쪽에도 하나를 더 불렀다.
두 번째 얼굴이 또렷해지자 숨이 짧아졌다. 첫 녀석이 나를 보고, 다음 녀석은 호위들을 봤다. 나는 무릎에 힘을 주고 버텼다.
“내가 가운데. 너는 서쪽, 너는 동쪽.”
둘이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촉할 필요는 없었다. 녀석들도 나만큼 저 안으로 뛰어들고 싶어 했다.
“서쪽은 줄을 끊지 말고 잡아. 동쪽은 일꾼 나오는 문부터.”
내가 낮게 말했다.
“안 보이면?”
“정해 둔 곳에서 소리쳐. 마음으로 부르지 말고.”
한 녀석이 웃었다.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각자 발을 떼었다.
나는 중앙 발판으로 올라갔다.
호위 하나가 창을 비스듬히 들었다. 끝이 내 가슴을 겨눴다.
“돌아가시오.”
“안쪽 작업자들을 내보내십시오.”
“나루지기 지시 없이는 못 들어갑니다.”
나는 뒤의 물길을 봤다. 빈 배를 잡으러 간 두 사람이 배가 비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나루에서 사람을 가둔 일을 멈추러 왔습니다.”
창이 더 가까워졌다.
나는 창끝에서 비껴나며 칼집으로 자루를 눌렀다. 호위가 힘을 주어 되밀었다. 발판이 좁아서 옆으로 더 물러날 곳은 없었다.
나는 힘을 겨루는 대신 눌렀던 칼집을 풀고 몸을 낮췄다. 창이 위로 들리는 순간 그의 무릎 안쪽을 발로 밀었다. 중심을 잃은 호위가 난간을 잡았다.
칼집의 단단한 부분으로 손목을 쳤다. 창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창을 발뒤꿈치로 뒤쪽에 밀었다. 따라온 사람들이 그를 붙잡았다.
그때 책임자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둘 더 있다! 얼굴 따라가지 말고 입구를 막아!”
그는 창고에서 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쪽에서 나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쪽을 보고 싶었지만 책임자가 바로 앞까지 왔다. 먼 곳의 분신이 무엇을 봤는지는 나도 몰랐다.
책임자가 칼을 뽑았다.
나도 칼을 뽑았다. 이번에는 칼집으로만 막을 수 없었다. 칼날이 한 번 부딪쳤다. 손바닥의 상처가 당겼다.
나는 뒤로 밀리면서 난간을 등지지 않으려 했다. 책임자는 내가 갈 곳을 줄이고 있었다. 무턱대고 공격해 오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 재주로 이곳을 다 망칠 생각이오?”
그가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숨을 아꼈다. 그의 칼이 낮게 들어왔다. 발을 물리고 바닥의 작은 못을 넘었다.
등 뒤에서 함께 온 사람들이 무기를 주워 멀리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책임자를 붙들면 다른 사람들이 들어갈 틈은 있었다.
나는 난간 너머의 배를 한 번 봤다. 사공이 빈 배를 붙들어 모퉁이에 걸고 있었다. 이순신은 자기 배에서 동쪽을 보고 있었다. 아직 신호는 없었다.
책임자가 내 시선을 따라가려 했다. 나는 칼을 들어 그를 다시 내 쪽으로 돌렸다. 그가 무기를 든 채 동쪽으로 가면 막 열려는 길이 다시 막힐 수 있었다.
책임자가 나를 난간 쪽으로 몰았다. 나는 일부러 한 걸음을 더 물러났다. 그의 등 뒤에서 동쪽 문이 조금 열렸다.
“뒤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는 돌아보지 않고 칼을 밀었다.
“이번에도 같은 수작이냐.”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번에는 정말 뒤를 봐야 하는데.
동쪽에서 짧은 외침이 났다.
“문 열렸다!”
분신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은 뒤에야 동쪽이 풀렸다는 것을 알았다. 책임자가 순간 그쪽을 봤다. 나는 그의 칼을 옆으로 밀고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팔꿈치로 내 어깨를 쳤다. 통증이 올라왔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그의 칼 든 팔 아래로 몸을 틀었다.
바닥의 장대가 발에 걸렸다.
나는 그걸 들어 올릴 생각을 버리고 발로 굴렸다. 책임자가 발을 빼는 순간 칼의 방향이 높아졌다. 나는 칼등으로 그의 손을 밀어 칼끝을 밖으로 돌렸다.
서쪽에서 분신이 소리쳤다.
“줄이 아니라 문을 잡고 있다! 호위 둘 이쪽!”
예정과 달랐다. 놈은 정해 준 줄까지 가지 못한 것이다.
나는 책임자와 칼을 맞댄 채 이순신 쪽을 봤다. 바위 옆에서 깃발이 움직였다. 동쪽을 맡은 사람들에게 서쪽으로 돌아가라는 신호였다.
내가 소리쳐 명령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이순신도 같은 소리를 듣고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책임자는 내 팔을 더 세게 눌렀다.
“저쪽 보다가 죽소.”
“보지 않으면 저쪽이 다칩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답했다.
그의 발이 내 발판 끝으로 들어왔다. 나는 한 번 힘을 빼서 그가 더 앞으로 딛게 했다. 칼날이 옆으로 미끄러지는 순간, 왼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오른손에 쥔 칼자루로 손등을 눌러 난간 쪽으로 꺾었다.
그의 손에서 빠진 칼이 난간 밖으로 떨어졌다.
책임자가 주먹을 뻗었다. 나는 어깨로 받고 그를 밀었다. 둘이 바닥에 넘어졌다. 함께 온 두 사람이 달려와 그의 팔을 붙들었다.
나는 바로 일어나 칼을 내렸다.
“묶고 무기부터 치우십시오. 물가에는 세우지 마십시오.”
책임자는 저항했지만 다시 일어나지는 못했다.
서쪽 문 앞에는 분신이 몸을 끼우고 있었다.
호위 둘이 닫으려는 문을 어깨로 버티는 중이었다. 다른 분신이 동쪽에서 돌아왔다. 그는 손에 짧은 줄을 들고 있었다.
“동쪽은 잡았다. 이건 어디에 걸어?”
서쪽의 분신이 문 안쪽 기둥을 가리켰다.
녀석은 실제로 문 사이로 들어가 줄을 걸었다. 함께 온 사람들이 바깥에서 줄을 당겼다. 문을 버티던 분신이 빠져나오자 문짝이 더 열렸다.
호위 하나가 장대를 휘둘렀다. 나는 몸을 낮춰 피하고 장대 아래를 칼등으로 쳤다. 동쪽 분신이 그 끝을 붙들었다. 둘이 다른 쪽으로 힘을 주자 장대가 손에서 빠졌다.
마지막 호위는 벽에 몰렸다. 나는 칼끝을 그의 몸에 들이대지 않고 발밑에 둔 무기를 가리켰다.
“칼을 내려놓으십시오. 발밑의 장대도 집지 마시고.”
그는 책임자 쪽을 봤다. 책임자는 이미 팔이 묶여 있었다.
칼이 바닥에 놓였다.
빈 배를 따라갔던 두 사람도 동쪽에서 무기를 빼앗겨 나왔다. 여섯 사람을 세고, 다친 곳을 보고, 지켜볼 사람들에게 넘겼다. 모든 지원자를 거기에 묶어 두지는 않았다. 미리 정한 사람들이 그들을 물에서 떨어진 돌턱 뒤로 데려갔다.
나는 물가를 봤다. 첫 작업자가 열린 동쪽 문을 빠져나와 바리데기가 내민 손을 잡았다. 책임자도 그를 봤다.
“처음부터 배가 목적이 아니었군.”
그가 말했다.
나는 칼을 내렸다.
“뒤를 보시라니까요.”
그제야 숨이 길게 나왔다. 우리 얼굴을 막느라 비워진 문으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같은 얼굴 셋이 숨을 몰아쉬며 한곳에 모였을 때, 서쪽을 맡았던 녀석이 나를 봤다.
“문 잡으라 그랬으면 덜 억울했겠다.”
“줄 못 잡은 걸 그렇게 말하냐.”
“닫히는 문을 놔두고 줄 잡으러 갔어야 했나?”
나는 웃었다.
“아니다. 잘했다.”
놈도 웃었다. 그 뒤로 문을 통과한 일꾼이 우리를 세 번 번갈아 봤다.
“어느 분께 인사를…….”
“문 잡던 저놈한테요.”
내가 가리키자 녀석이 괜히 소매를 털었다. 나와 똑같은 얼굴로 으쓱하는 꼴이 썩 볼 만했다.
안쪽의 작업자들이 문 밖으로 나왔다.
대부분 손에 공구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칼을 보고 멈췄다. 바리데기가 먼저 다가가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알려 줬다.
“짐은 나중에요. 지금은 다니는 길을 먼저 비워 주세요.”
정도전은 이름과 일하던 자리를 맞췄다. 연이 준 명단이 있었지만 그것만 믿지는 않았다. 오늘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있는지도 물었다.
이순신은 배를 선착장 안쪽으로 붙였다. 들어올 때 쓰던 빈 배는 다른 쪽에 묶여 있었다. 사람이 탄 줄 알고 호위들이 쫓아갔던 배였다. 사공이 그 안의 줄을 치워 이제는 작업자들을 태울 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조종실로 가는 발판을 봤다.
아까 확인한 버팀줄이 그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작업자가 그 줄 끝을 다시 짚어 줬다.
“저게 당겨지면 이쪽 길을 버텨야 합니다. 위에서 누가 막아도 발판은 남겨야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두 분신을 돌아봤다.
“하나는 서쪽 줄, 하나는 동쪽 짐 빠지는 길을 도와. 맡아 줄 사람이 생기면 직접 말하고 돌아와.”
둘은 흩어졌다. 나는 올라갈 준비를 했다.
그때 서쪽 둑에서 흙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자청비가 달려가며 손을 들었다.
“그 위에 짐 내려요! 사람이 먼저 건너야 해요!”
나는 발을 돌렸다.
싸워서 연 입구 너머에, 아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