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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의밤 · 9화

갈대 속의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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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은 보였지만 배 밑은 보이지 않았다.

아침 물안개가 갈대 사이를 채웠다. 어젯밤 사람을 본 자리는 맞았다. 그런데 배의 반쯤은 물속이 아니라 옅은 안개 안에 잘려 들어간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 붙이지 말게.”

이순신이 노를 짚었다.

“배가 그쪽으로 기울었네. 기대면 같이 밀릴 수 있어.”

우리가 탄 작은 배에는 나와 이순신, 자청비, 사공 하나가 있었다. 정도전과 바리데기는 양규의 사람들과 둔덕 쪽에 남았다. 돌아오는 사람을 받을 자리와 짐을 챙기기로 했다.

나는 물 위에 늘어진 줄을 걷었다. 줄 끝은 뒤쪽 돌 둔덕에 묶여 있었다. 아직 손가락 사이로 그 무게가 느껴졌다.

“저것만 잡고 있으면 돌아갈 수 있는 겁니까?”

사공이 물었다. 나는 어제 장대 밑에서 사라졌던 널판을 떠올렸다.

“줄은 방향을 알려 줄 뿐이네. 배를 돌릴 물이 남았는지도 봐야 하네.”

이순신은 말을 마치고 물가에 박힌 갈대 두 줄기를 짚어 주었다. 사공은 두 지점을 번갈아 보며 노를 움직였다.

가까워질수록 물새호가 기운 정도가 선명해졌다. 오른쪽 난간은 물에 닿아 있었고, 왼쪽 밑바닥은 진흙 위로 드러나 있었다. 돛 아래쪽에 덧댄 푸른 천이 바람을 받지 못하고 처졌다.

“물새호!”

내가 외쳤다.

난간에 팔 하나가 올라왔다. 손바닥이 흔들리더니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이순신이 손을 들어 배를 멈췄다.

“이만큼이면 되네. 더 밀어 넣지 말게.”

그는 물새호 왼편의 튀어나온 들보에 줄을 걸었다. 나는 내 곁에 분신을 세워 작은 배의 줄을 맡겼다.

“여기서 받아. 누구도 먼저 올라오게 하지 말고.”

“네가 부르면?”

“입으로 부른다. 안 들리면 기다려.”

나는 줄을 타고 큰 배로 건넜다. 두 배 사이에서 발끝이 한 번 물에 잠겼다. 차가운 감각이 종아리까지 훑었다. 어제의 손이 떠올랐지만 아래를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들보에 상체를 걸치고 몸을 끌어올렸다.

갑판은 비스듬했다. 굴러다니던 사발 하나가 내 발목에 닿았다. 나는 그것을 집어 난간 구석에 끼워 놓고 사람에게 다가갔다.


세 사람이 있었다.

난간에 기대 앉은 사내 하나, 볕을 피한 천 아래에 누운 사내 하나, 물통 곁에 무릎을 꿇은 사내 하나.

물통 옆 사람이 통을 기울여 마지막 물을 그릇에 받았다. 제 입술도 갈라져 있었는데 그걸 누운 동료에게 가져갔다.

“한 모금만 더 해. 곧…….”

나를 보고 말이 끊겼다.

나는 물병을 내밀었다.

“마실 물입니다.”

그가 얼른 받으려다 손을 멈췄다.

“셋입니다. 여기 셋.”

“더 가져왔습니다. 천천히 드십시오.”

물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는 두 모금쯤 마시고 다시 동료에게 병을 건넸다. 나는 허리에 달린 다른 물병을 꺼내 난간 쪽 사람에게 주었다.

“윤석 씨가 누구십니까?”

물통 옆 사내가 나를 봤다.

“저인데요.”

이름을 듣자 오히려 한동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윤석이 동료가 돌려준 물병을 받아 들고 입가의 물을 소매로 닦았다. 더 마시라고 해야 하는데, 나는 말도 못 하고 얼굴만 보고 있었다. 찾았다. 살아 있었다.

나는 옆에 쪼그려 앉았다.

“댁에 다녀왔습니다.”

윤석이 물병을 잡은 채 굳었다.

“집에 무슨 일이…….”

“아무 일 없습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너무 늦게 덧붙였다. 그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나는 다음 말을 조금 천천히 했다.

“따님이 신을 닦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새 신을 사 오실 거라고 하더군요. 닦던 신은 문턱에 가지런히 놓았고요.”

윤석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물병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밑을 받쳐 주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손등에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내가 보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갑판 아래에서 작은 배가 삐걱거렸다. 자청비가 물 꾸러미를 들어 보였다. 나는 윤석 옆에 병을 놓고 그것을 받아 올렸다.

돌아왔을 때도 그는 같은 자세였다.

“언제 갑니까?”

“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모두 옮길 수 있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윤석이 빈 물통을 봤다. 나는 배에 남겨 둔 꾸러미를 가리켰다.

“저희가 돌아갈 방법을 마련하겠습니다. 그동안 드실 건 가져왔습니다.”

그는 물병을 제 옆에 놓고, 잠시 뒤 한 모금을 더 마셨다.


이순신이 올라오자 윤석이 일어나려 했다.

“앉아 계시게. 배부터 보겠네.”

그는 갑판에 발을 놓는 간격을 달리하며 움직였다. 들보를 두드리고, 물에 잠긴 쪽의 밧줄을 잡아당겼다. 사공은 아래에서 배가 닿지 않게 노를 받쳤다.

“언제부터 기울었습니까?”

윤석은 우리가 항구에 도착하기 전 아침에 원래 나루를 떠났다고 했다. 항구까지 사흘이면 닿을 길이었다. 중간에 물살이 세어지면서 배 앞에 구호 표지가 보였다고 했다.

“좁은 데를 돌아 나가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표지가 있는 쪽으로 갔지요. 그런데 갑자기 물이 옆으로 빠졌습니다.”

그는 선실 문턱을 가리켰다.

“여기까지 물이 올라왔어요. 배가 누우면서 짐도 쏠렸습니다.”

“다른 배를 만났습니까?”

“제대로 본 배는 없습니다. 어두워지면 불빛이 가끔 보였는데, 불러도 못 듣는지…….”

윤석이 잠깐 창피한 듯 웃었다.

“사람 소리가 나면 우리도 계속 불렀습니다. 어제는 흔들 팔도 힘이 없더군요.”

나는 사내가 물 달라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던 어제 일을 생각했다. 이 배의 기침과 그 검은 형체가 같은 곳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여기 있는 셋을 먼저 확인해야 했다.

자청비도 음식을 들고 올라왔다. 그녀가 갑판에 천을 펴자 윤석의 동료 하나가 덥석 집으려다 멈췄다.

“먹어도 됩니까?”

“그러려고 가져왔지요. 물 조금 더 드시고요.”

그가 웃더니 죽처럼 불린 밥을 떠먹었다. 나는 그의 웃음을 보고 배가 기울어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었다.

이순신이 내게 손짓했다.

“이 배를 당겨 빼는 것은 그만두세.”

“작은 배로는 힘이 모자랍니까?”

“배 밑이 진흙에 걸렸네. 건드리면 지금 버티는 들보부터 부러질 수 있어.”

나는 들보 아래를 들여다봤다. 나무에 길게 벌어진 틈이 있었다. 작은 배를 묶은 줄과는 다른 쪽이었다.

“사람만 옮기는 겁니까?”

“그렇네. 그런데 물이 더 줄고 있네.”

갈대 끝에 남아 있던 젖은 선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순신은 내가 건넌 쪽이 아니라 배 뒤편의 낮은 둔덕을 살폈다.

바짝 마른 땅까지 닿지는 않았지만 돌과 흙이 높게 쌓인 자리가 있었다. 그는 긴 장대를 받아 여러 곳을 짚었다.

“저곳을 먼저 확인하세. 배가 더 기울면 옮겨 앉을 자리가 필요하네.”

나는 윤석의 표정을 봤다. 그는 우리가 오늘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할까 봐 듣고 있었다.

그 눈앞에서 둘이 작은 소리로 의논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 해 지기 전에 모두 건너는 건 어렵답니다.”

내가 말했다.

“대신 물과 음식을 더 옮기고, 배에서 나갈 자리를 만들 겁니다. 내일 물이 들 때 사람부터 옮깁니다.”

윤석이 잠시 갑판을 내려다봤다.

“또 기다리는군요.”

“예. 저도 여기 남겠습니다.”

윤석의 시선이 내 보따리로 갔다.

“밤에도요?”

“아침에 깨우셔도 됩니다. 못 들으면 옆구리를 찌르시고요.”

그가 입술을 조금 움직였다. 웃으려다 만 얼굴로 물병을 끌어당겨 셋이 마실 몫을 나눴다. 비어 있던 물통에도 조금 남겨 두었다.


분신이 작은 배의 줄을 사공에게 넘기고 올라왔다. 나는 녀석과 함께 널판을 옮겼다.

널판 한쪽은 배의 낮은 출입구에, 다른 쪽은 단단함을 확인한 둔덕에 걸쳤다. 줄을 묶고 실제로 한 번씩 밟아 봤다. 분신이 먼저 건너더니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여기는 돌이 굴러. 가운데로.”

나는 놈이 알려 준 쪽에 짧은 말뚝을 세웠다. 발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보이도록 천도 묶었다.

윤석이 조금 일어나 앉았다.

“두 분은 형제십니까?”

나는 분신을 봤다. 분신이 먼저 대답했다.

“한 사람이 일을 두 배로 하는 중입니다.”

“말은 반으로 해라.”

누워 있던 선원이 기침하다가 웃었다. 한동안 들리지 않던 소리가 난 듯 윤석이 그쪽을 돌아봤다.

밧줄을 걸고 천막을 옮기는 동안 작은 배가 한 차례 왕복했다. 자청비는 사공과 바깥으로 돌아가 필요한 물건을 전했고, 양규의 병사 둘이 추가 물과 마른 옷을 들고 들어왔다. 그들이 가져온 굵은 줄은 둔덕의 바위에 걸었다.

바리데기가 물가에서 외치는 소리가 마지막 왕복 때 들렸다. 내일 건넌 사람들이 쉴 자리를 다 마련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크게 손을 흔들어 답했다.

저녁에는 배 뒤편에 마련한 둔덕 자리에서 먹었다. 기운 배를 뒤에 두고, 사람 셋이 마른 천 위에 나란히 앉았다. 이순신과 나는 그쪽에 남기로 했다. 병사 둘과 번갈아 배와 물 높이를 살필 것이었다.

나는 분신을 거뒀다. 갑자기 몰려온 피로에 밥그릇을 떨어뜨릴 뻔했다. 윤석이 받쳐 주었다.

“찾으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릇을 고쳐 잡았다.

“돌아가서 듣겠습니다.”

그는 더 말하지 않고 천을 당겨 동료의 다리를 덮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물새호의 돛이 어둠에 섞였다. 나는 졸음을 쫓으며 물소리를 들었다. 지금 우리가 앉은 곳이 내일도 같은 자리에 있을지, 그런 생각이 자꾸 올라왔다.

이순신은 내 옆에 앉아 줄의 팽팽함을 손끝으로 살폈다.

“겁이 납니까?”

내가 묻자 그가 나를 봤다.

“나도 물 위에 있네.”

나는 잠깐 웃었다. 이순신이 줄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받아 보니 아까보다 느슨했다. 나는 늘어진 만큼을 당겨 기둥에 감았다.

윤석이 품에서 젖은 나무쪽 하나를 꺼냈다. 배가 틀어질 때 떨어져 나온 표지라고 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패인 화살표를 문질렀다.

“이쪽이면 돌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화살표 밑에는 낯선 나루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윤석은 그 그림을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돌아갈 길을 알려 준 표지라는데, 그는 아직 여기 있었다.

9화 끝

초기 원고 기준일 최종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