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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의밤 · 5화

돌아가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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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수레 위의 짐을 도로 끌어 내렸다.

옆에 있던 관리가 다시 올리려 하자, 이번에는 수레 바퀴 앞에 앉았다.

싸우는 소리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이 모였다.

“그 짐을 내리시면 출발을 못 합니다.”

“그러려고 내렸어요.”

나는 걸음을 멈췄다.

윤석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에게는 아버지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전부 듣고도 고개만 끄덕이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든 당장 해결하고 싶었다.

“어디로 가는 수레입니까?”

내가 묻자 관리가 접힌 종이를 폈다.

“항구 서쪽에 있는 나루 대기소요. 쉼터가 위험해져 그쪽으로 옮깁니다. 고려 쪽으로 돌아갈 배도 거기서 정하기로 했고요.”

수레 옆에 노인과 사내가 서 있었다. 노인은 작은 보따리를 끌어안았고 사내는 연장 꾸러미를 멨다.

나는 부두에 걸린 줄을 봤다.

바위 쪽 배를 막는다던 일이 어느새 사람을 내보내는 일이 돼 있었다.

“다들 항구를 떠나야 합니까?”

“전부는 아니오. 쉼터가 위험 구역 안에 있잖소. 집 없는 분들부터 옮기는 겁니다.”

“저 사람은 여기 집이 있어요.”

바퀴 앞의 여자가 연장 꾸러미를 멘 사내를 가리켰다.

“그쪽은 등록된 집이 없고…….”

“일하는 곳에 방이 있어요. 주인을 불러 올게요.”

“해 지기 전에 옮겨야 합니다. 사정은 가서 다시 말씀하시면 돼요.”

여자가 일어나 옷의 흙을 털었다.

“서쪽으로 가고 나면 여기 일터에서는 어떻게 찾아와요?”

관리의 시선이 종이로 내려갔다.

나는 여자를 옆으로 불렀다. 부두 담장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낮췄다.

“저 뒤로 골목이 있습니다. 짐만 들 수 있으면 수레를 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여자는 골목을 보지 않았다.

“두 분께는 물어봤어요?”

“여기서 떠나기 싫으신 것 아닙니까?”

“수레를 타기 싫은 건지, 목적지가 다른 건지부터 물어봐야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노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노인은 보따리의 매듭을 계속 만지고 있었다.

“복례 어르신. 어디로 가려고 여기 오셨죠?”

“동쪽. 딸네.”

노인이 항구 동쪽을 가리켰다.

“갈대밭 있는 나루로 건너면 된댔어. 우리 애가 거기서 기다린다 그랬어.”

여자가 관리에게 설명했다.

“내일 동쪽 마을에서 딸이 데리러 오기로 했어요. 서쪽 나루로 가면 서로 엇갈려요.”

이번에는 사내를 봤다.

“두만 씨는요?”

“내가 만든 문이 아직 안 달렸소.”

사내가 연장 꾸러미를 고쳐 멨다.

“집 주인이 문 달면 같이 밥 먹자고 했는데, 내가 가 버리면 누가 답니까.”

그는 농담을 한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두 사람을 다시 봤다. 무작정 떠나기 싫다는 게 아니었다. 각자 가려던 곳으로 보내 달라는 말이었다.

“돌아갈 곳을 적으라기에 고려라고 했소.”

두만이 관리의 종이를 보며 말했다.

“거기서 왔으니까. 지금 거기로 가겠다는 뜻은 아니었소.”

관리도 목소리를 낮췄다.

“저한테 넘어온 건 이 종이뿐이오. 출신지와 돌아갈 곳이 같은 칸에 있잖소.”

여자가 종이를 받아 들었다.

누군가 한 줄로 묶어 적은 이름 아래에,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짐이 놓여 있었다.


정도전은 부두에서 길을 막는 범위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사람을 보내기보다 직접 데려오는 편이 빠르겠다고 생각했다. 여자에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고맙습니다. 저는 바리예요.”

“홍길동입니다.”

“두 분은 제가 모시고 있을게요.”

나는 정도전이 있는 부두로 걸음을 재촉했다.

정도전을 데리고 왔을 때는 자청비도 수레 옆에 있었다. 빈 바구니를 들고 오다가 막혀 선 모양이었다.

정도전은 관리의 종이를 읽었다. 이어 자신이 내린 지시가 적힌 판을 받아 옆에 놓았다.

“쉼터를 옮기라는 건 내가 정했소.”

그가 말했다.

“바위 쪽 물이 다시 꺾이면 낮은 창고부터 위험하니.”

“왜 이 사람들까지 다른 나루로 보냅니까?”

내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묵을 자리를 서쪽에 마련해 두었소. 그곳에서 출신지별로 돌아갈 배를 구하기로 했고.”

“돌아가지 않을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듣고 있소.”

그의 목소리가 굳었다. 나는 턱을 당겼다.

복례가 나와 정도전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바리는 그녀 곁에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사흘 전에 제가 두 분을 이 쉼터에 모셨어요. 그때도 말씀드렸는데, 오늘 받은 종이에는 없네요.”

바리가 수레 위에서 자기 보따리를 찾았다. 안에서 작은 나무패와 접힌 쪽지를 꺼냈다.

나무패에는 두만이 일하는 집의 표시가 있었다. 쪽지는 복례의 딸이 남긴 것으로, 데리러 올 날짜와 나루가 적혀 있었다.

정도전이 관리에게 물었다.

“처음 들어올 때 적은 건 어디 있소?”

“쉼터에 있습니다. 옮길 명단만 새로 받았습니다.”

“가져오시오. 다른 사람 것도 같이.”

관리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정도전이 덧붙였다.

“그대가 빠뜨렸다는 말이 아니오. 내가 두 명단을 맞추라고 하지 않았소.”

바리가 쪽지를 도로 접으려다 손을 멈췄다.

“그럼 두 분은 남아도 되나요?”

“묵을 곳과 갈 곳을 확인하겠소. 저 창고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소.”

복례가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다.

“나는 길가에서 자도 돼. 우리 애만 만나면 돼.”

바리가 무릎 위의 보따리를 받쳐 줬다.

“길가에서는 주무시지 마세요. 저도 밤새 걱정하게 되잖아요.”

노인이 다시 앉았다.

정도전은 그 모습을 보고 관리에게 해 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했다. 확인이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보내지 말라고도 했다.

내가 자청비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종이 한 장 고치는 데 사람이 이렇게 필요합니까.”

“종이만 고치면 오늘 밤 잘 곳이 생겨요?”

자청비가 빈 바구니를 내게 맡겼다.

“따라와요. 잘 곳부터 봅시다.”


두만의 일터는 항구 안쪽 골목에 있었다.

집 주인은 열린 대문을 가리켰다. 새 문짝 두 개가 담장에 기대어 있었다. 한쪽은 아직 빗장을 끼울 구멍도 뚫리지 않았다.

“어제부터 기다렸지. 연장을 구하러 간다더니 왜 아직 안 오는가 했어.”

함께 온 관리가 두만에게 들은 사정을 전했다.

두만은 길을 잃었다가 바리와 돌아온 뒤, 쉼터에서 이틀을 쉬었다고 했다. 어제는 연장을 찾고 나니 늦어 하루 더 묵었고, 오늘 일터로 갈 생각이었다. 소식을 먼저 전했어야 했는데 품삯을 깎을까 봐 미뤘다고도 했다.

“나도 기다리다 다른 사람을 부를 뻔했어.”

주인은 한숨을 쉬었다.

“방은 그대로 뒀네. 하지만 내일은 와야 해. 문 없이 며칠을 더 살 수는 없으니.”

그가 뒤쪽 작은 방을 열었다. 벽에 걸린 작업복과 구석의 밥그릇이 보였다. 낯선 사람이 잠깐 묵고 갈 빈방은 아니었다.

관리도 안을 확인했다.

“두만 씨가 와도 된다는 말씀이죠?”

“내가 와 달라고 하지 않나.”

주인은 우리가 내미는 종이보다 문짝을 더 오래 봤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이건 왜 들고 온 겁니까?”

“오는 길에 곡식 가게 들르려고요.”

“잘 곳부터 본다면서요.”

“봤잖아요. 이제 제 일도 해야죠.”

자청비는 씨앗을 말릴 자리를 빌리고 남은 알곡을 맡길 생각이었다. 부두 창고가 닫히면 그것도 옮겨야 했다.

가게 주인은 지붕 아래 자리를 내줬지만 오래 맡아 줄 수는 없다고 했다. 자청비는 사흘 동안 먼저 보관하고, 그 뒤에는 값을 다시 정하자고 했다.

자리를 정한 뒤 부두로 돌아가, 말리던 씨앗 일부를 가져왔다. 가게 주인이 선반을 가리켰다.

“먹을 곡식하고 같은 선반에 두면 되지?”

“섞이지 않게 따로 둬요. 다음 농사에 심을 씨앗이니까.”

그녀는 살아남을 만한 씨앗과 상한 것을 따로 놓았다. 주인이 같은 바가지로 퍼 담으려 하자 손등을 가볍게 막았다.

자청비는 값이 더 들지 않도록 맡길 양을 줄이고 직접 자리를 쓸었다.

나는 자청비가 가리키는 곳에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당장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수레로 돌아가니 해가 담장에 걸려 있었다.

바리는 복례의 발에 헝겊을 덧대고 있었다. 신이 헐거워 뒤꿈치가 벗겨졌다고 했다.

나는 두만에게 방이 그대로 있다는 말을 전했다.

“문은 내일 달라고 하십니다.”

두만의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멎었다.

“화를 많이 냈소?”

“문을 안 달아 줬으니 날 만하지요.”

“그건 그렇지.”

그가 연장 꾸러미를 풀었다. 대패에 묻은 먼지를 소매로 닦더니 다시 넣었다.

정도전이 와서 관리가 적어 온 것을 확인했다. 두만에게 오늘 바로 일터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주인에게 직접 연락을 미룬 사정을 전하라고 했다.

두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수레에서 자기 짐을 내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다시 올리지 않았다.

복례는 사내의 빈자리를 봤다.

“나는 내일이구나.”

“오늘 밤은 여기 있어요.”

바리가 노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여기라는 곳은 아직 길가였다.

정도전이 쉼터 담당을 불렀다. 항구 안쪽 식당의 빈방을 하룻밤 빌리고, 복례와 바리가 쓸 침구를 옮기게 했다. 비용과 인원을 적은 종이에 자기 이름을 썼다.

“저도 거기서 먹을 텐데, 밥값은 따로 드리겠습니다.”

바리가 말했다.

“두 분이 쉬도록 정한 자리요.”

“저는 쉼터에서 일한 품삯을 받았어요. 낼 수 있는 건 낼게요.”

정도전은 잠시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레 위의 마지막 보따리를 들었다. 바리의 것이었다.

묵직했다. 약초 꾸러미 옆으로 해진 버선이 튀어나왔다.

“이걸 메고 두 사람을 모셔 왔습니까?”

“처음에는 저것보다 가벼웠어요.”

“도중에 뭘 더 샀는데요?”

바리가 복례 쪽을 봤다.

노인은 자기 품에 든 작은 보따리만 꼭 안고 있었다.

나는 더 묻지 않고 짐을 어깨에 올렸다. 허리가 당겼지만 이번에는 들 만했다.


문제는 동쪽 나루였다.

이순신이 식당으로 찾아왔다. 그는 바리에게 복례가 건널 곳부터 물었다.

바리가 쪽지를 펴자 그가 손가락으로 위치를 짚었다.

“여긴 같은 조선 땅 안의 건넘이오. 그래도 막힌 물길과 갈라지는 곳이 가까우니 내일 아침에 먼저 살펴야겠소.”

“못 건널 수도 있나요?”

“지금 괜찮다고 약속할 수는 없소.”

복례가 듣고 있었다.

바리는 쪽지를 숨기지 않았다. 노인 쪽으로 의자를 돌려 앉았다.

“내일 물을 보고 정할게요. 못 건너면 따님에게 소식을 보낼 다른 길을 찾고요.”

“우리 애가 기다리다가 가 버리면?”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바리도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만날 수 있게 도울게요. 못 만나고 떠나라고는 안 할게요.”

노인은 쪽지를 접어 품에 넣었다.

저녁이 나왔다. 바리는 복례의 그릇을 앞에 놓고 국물이 뜨겁지 않은지 살폈다. 그러는 동안 자기 밥은 손도 대지 않았다.

자청비가 생선 접시를 바리 앞으로 밀었다.

“이건 식으면 맛없어요.”

“저는 나중에…….”

“가시는 제가 발랐어요.”

바리가 젓가락을 들었다.

나는 내 밥을 먹었다. 그릇 바닥이 보일 즈음, 바리가 이순신에게 물었다.

“아침에 길을 보실 때 저도 갈게요.”

“현지 사공과 함께 나설 생각이오.”

“저도 건너편에 누가 기다리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그는 나루에서 만날 시간을 정했다.

나도 일어서려다가 정도전을 봤다.

“저는 뭘 하면 됩니까?”

그가 내 붕대를 보고 말했다.

“아침에 제때 나오시오.”

“그건 할 수 있습니다.”

자청비가 내 쪽으로 빈 그릇을 밀었다.

“그럼 오늘은 그릇부터.”

나는 빈 그릇을 포개 들었다. 바리가 자기 그릇을 마지막에 얹어 줬다.

밖에서 막힌 물길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서쪽으로 가려던 수레는 이미 떠났고, 두 사람의 짐은 그 위에 없었다.

내일은 복례가 정말 가려던 곳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5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