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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의밤 · 22화

남겨 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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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러 오신 것 아니었습니까?”

노인이 내게 물었다.

우리는 잠자리로 쓰는 낮은 창고 앞에 서 있었다. 내가 고친 문 안에 노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짐을 놓고 살았다. 밤새 확인한 물높이와 상류의 기록을 맞춰 보면, 본 수문을 끊은 뒤 물이 이곳까지 밀려올 수 있었다.

집을 비우는 편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 말 뒤에 노인의 질문이 돌아왔다.

“그런데 왜 우리가 집을 버려야 합니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해가 가운데 오기 전에 배를 띄워야 했다. 그 말을 먼저 하면 노인이 내 사정 때문에 집을 버리라는 뜻으로 들을 것 같았다. 나는 문지방을 넘지 않고 기다렸다.

노인은 문지방을 가리켰다.

“저 문 달아 준 사람이 자네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바람이 안 새는데.”

나는 고친 문을 봤다. 닫을 때 끌리지 않도록 밑을 조금 깎아 냈던 자국이 있었다. 노인이 그걸 손바닥으로 쓸었다.

나도 이 나루에 잠깐 머물고 싶었다. 해야 할 일을 마치면 저 문을 열고 들어와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영 정착하겠다는 약속까지 한 것은 아니어도, 마음속에는 이미 돌아올 자리가 생겼다.

그 자리를 비우자고 말하는 쪽에 내가 서 있었다.


정도전은 노인에게 함께 높은 곳에 가 보자고 했다.

노인은 처음에는 싫다고 했다. 빈터만 보여 주고 살 수 있다고 할까 봐서였다.

“살 만한지 직접 보시고 말씀해 주시오. 저도 아직 다 확인한 것이 아니오.”

정도전의 답에 노인은 마침내 문을 닫았다. 짐은 안에 둔 채였다.

언덕 위에는 예전에 짐을 말리던 긴 집이 있었다. 낮은 나루와는 거리가 있었고, 옆으로 마른 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지붕 한쪽이 벌어져 있었다.

문을 열자 먼지 냄새가 났다. 바닥에는 쌓아 놓은 널과 깨진 바구니가 있었다.

노인이 웃음도 아닌 소리를 냈다.

“여기서 자라고요?”

정도전은 천장을 봤다.

“지금은 못 자겠소.”

그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직접 널 하나를 옆으로 옮겼다. 바닥이 얼마나 남는지부터 드러내려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끝을 잡고 함께 옮겼다. 그 틈으로 노인이 문밖으로 나갔다.

널 아래서 먼지가 일었다. 노인이 문밖에서 기침하는 동안 정도전의 소매가 시커멓게 됐다. 그는 털지도 않고 다음 널을 잡았다.

정도전은 노인에게 바람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쪽을 짚어 달라고 했다.

“수리하는 데 쓰던 널을 위로 옮길 수 있소. 다만 저 아래 집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소.”

그가 말했다.

“돌아가서 다 새로 지어 주겠다고도 약속 못 하오. 여기서 오늘을 보낼 곳부터 만들려 하오.”

노인은 한동안 천장을 봤다. 그러고는 지팡이 끝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저 틈부터 막아요. 밤바람은 저기로 들어오겠어.”


우리가 돌아왔을 때 자청비와 연은 식량을 나누고 있었다.

지금 먹을 것, 옮겨 두고 먹을 것, 젖으면 못 쓰는 것. 자청비는 작은 바구니를 따로 들었다. 항구에서 가져온 씨앗 몇 가지가 그 안에 있었다.

“그걸 심으면 금방 먹을 수 있습니까?”

짐을 나르던 사람이 물었다.

자청비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밥은 솥에서 나와요. 이건 다음에 심을 거예요.”

그녀는 내게 곡식 한 자루를 가리켰다.

“내일 먹을 것은 저 위에 올려요. 오늘 먹을 건 여기 남기고.”

나는 자루를 들어 배 쪽으로 옮겼다. 물길을 따라 돌아가면 언덕 뒤의 안전한 선착장으로 짐을 가져갈 수 있었다. 사람은 마른 길로도 갈 수 있었지만 무거운 물건까지 들고 오르기는 어려웠다.

이순신은 사공들과 배의 순서를 나눴다. 주민을 태울 배와 짐을 실을 배를 구별하고, 빈 배가 돌아와 한 번 더 싣도록 했다. 아무도 타지 않을 때도 배가 필요했다.

바리데기는 어제 다친 남자와 아내가 쉴 자리를 먼저 정했다. 그들이 사람들 지나가는 길 한가운데에 놓이지 않도록, 언덕 위 집의 안쪽을 비웠다.

연은 천을 나눠 주며 오래 서 있지 않으려고 틈틈이 앉았다. 나는 그녀의 일을 대신 빼앗기보다 옆에 짐을 가져다 놓았다. 그녀는 앉아서도 무엇을 먼저 보낼지 나보다 정확히 골랐다.

“이건 남겨요. 솥 뚜껑이에요. 솥보다 먼저 가면 오늘 밥을 못 해요.”

나는 들었던 뚜껑을 내려놓았다.

“제가 깊이 생각을 못 했습니다.”

“깊을 것도 없어요. 뚜껑이잖아요.”

내가 웃자 옆의 일꾼도 웃었다. 짐을 싸는 얼굴들이 잠깐 풀렸다.


노인은 가장 큰 궤짝 앞에서 멈췄다.

나는 둘이 들면 옮길 수 있을 것 같아 한쪽을 잡았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뚜껑을 열자 오래 쓴 그릇들이 천 사이에 들어 있었다.

“다 가져갈 수 있습니까?”

노인이 물었다.

배에는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먼저 사람과 식량을 옮겨야 했다. 나는 궤짝을 내려놓고 그 사실을 말했다.

노인은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평생 모은 건 아닌데, 여기 와서 다시 모았어요.”

그가 그릇 하나를 들었다. 테두리가 조금 깨져 있었다.

노인은 깨진 테두리가 내 손에 닿지 않게 그릇을 돌려 주었다.

“작은 상자에 담으면 일부는 더 실을 수 있습니다. 남는 자리는 마지막에 다시 보겠습니다.”

노인이 그릇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궤짝에 남기고, 어떤 것은 천에 싸서 따로 놓았다. 나는 그가 고른 것을 받아 상자 안에 넣었다. 노인은 두고 가려던 밥그릇을 도로 집었다. 나는 그만한 틈을 만들어 줬다.

문밖에서는 다른 집의 짐도 나왔다. 어떤 사람은 침구부터, 어떤 사람은 작은 나무 인형부터 내놓았다. 무엇이 생활이고 무엇이 사치인지 내가 대신 구별할 수는 없었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문지방을 쓸었다.

“이걸 남기고도 살 수야 있겠지.”

그가 말했다.

“그렇다고 괜찮은 건 아니오.”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답했다.

노인은 궤짝에 남긴 그릇을 한 번 더 봤다. 나는 상자를 들어 달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배가 곧 떠난다는 말로 서둘러 고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덕 위 집은 해가 높아지면서 달라졌다.

현지 목수가 지붕을 막는 동안 정도전은 널을 받쳐 올렸고, 나는 바닥의 튀어나온 못을 뽑았다. 아래 창고에서 남긴 자재로 바람 새는 틈을 막고 물통과 화로를 놓을 자리도 비웠다.

새집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오늘 밤 몸을 누일 곳은 생겼다. 정도전은 널을 내려놓은 뒤에도 한동안 팔을 펴지 못했다.

노인이 다시 들어왔다.

그는 구석에 앉아 한참 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자기가 짚었던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지 얼굴을 기울여 봤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자겠소.”

정도전이 고개를 숙였다.

“필요한 것이 더 있으면 말씀해 주시오.”

“저 아래 집은 나중에도 보고 싶소.”

그 말에 나는 잠깐 눈을 내렸다.

“돌아갈 때 같이 가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노인은 대답 대신 상자 뚜껑을 열었다. 가져온 그릇부터 살피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가져온 작은 상자를 구석에 놓았다. 그릇이 부딪치지 않게 마지막으로 천을 끼웠다.

밖에서는 연이 남은 집들을 확인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리데기는 그녀와 동행했다. 자청비는 비워지는 주방에서 마지막 밥을 지었다.

나는 언덕 아래를 내려다봤다.

밥을 먹고 문을 고치던 곳이 점점 비어 갔다. 내 손으로 손본 것들을 두고 떠난다는 실감이 늦게 올라왔다.

정도전이 내 옆에 섰다.

“마음에 걸리오?”

“예. 잠깐 머물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낮은 집들을 같이 봤다.

“그럼 돌아와서 다시 볼 이유가 있겠구려.”

그 말은 아무것도 잃지 않을 거라는 약속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은 짐을 가지러 언덕을 내려갔다.

길 중간에서 발을 멈췄다. 아래의 문들은 거의 닫혀 있었다. 문 하나 앞에는 방금 꺼낸 그릇 자국이 먼지에 남아 있었다.

창고 안에는 내가 놓아 둔 짐도 있었다. 창 옆, 사내가 써도 된다고 했던 자리였다.

나는 다른 짐 아래 끼어 있는 내 보퉁이부터 뺐다. 남에게 비우라고 하면서 내 자리만 마지막까지 남겨 두고 있었다.

노인도 남겨 둔 짐을 확인하러 내려와 있었다. 내가 보퉁이를 배에 내려놓자 그가 물었다.

“자네 자리도 뺐소?”

“예. 돌아오면 새로 찾아야겠습니다.”

“그땐 또 문부터 달겠구려.”

나는 빈손을 펴 보였다. 노인은 피식 웃고 상자 한쪽을 내게 맡겼다. 짐을 싣는 배는 아직 한 번 더 돌 수 있었다.

2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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