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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of Yuldo · Episode 3 · Korean original

밥보다 먼저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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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루 밑에 손을 넣었다.

관리가 급히 팔을 뻗었다.

“잠깐. 주인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제 물건이에요. 확인할 거면 빨리 해 줘요. 이대로 두면 썩으니까.”

“우선 그 자리에…….”

자루에서 떨어진 물이 관리의 신발을 적셨다. 그가 손을 거두자 여자는 마른 자리를 찾았다.

나는 보따리에서 마른 웃옷을 꺼내 널판에 펼쳤다.

“여기라면 됩니까?”

여자가 옷을 봤다. 나도 봤다. 밤새 지키던 유일한 마른 옷이었다.

“괜찮아요?”

“이미 폈습니다.”

그녀가 자루를 그 위에 뉘었다.

“나중에 털어 줄게요.”

관리가 자루를 가리켰다.

“본인 물건인지 확인할 표식이 있습니까?”

“안감 왼쪽 위에 꿰맨 자국이 있어요. 파란 실로 반달 모양이에요. 확인해 봐요.”

끈을 느슨하게 하고 자루 입구를 뒤집었다. 젖은 천 안쪽에 푸른 반달이 드러났다.

여자는 끈에 달린 작은 패도 가리켰다.

“기록에는 자청비라고 되어 있을 거예요.”

관리가 이름을 적었다.

그녀의 손톱 아래 흙이 남아 있었다. 자루를 성급하게 가져가려 하더니, 열 때는 천이 상할까 손가락부터 조심히 넣었다.

안에는 작은 곡식들이 있었다.

나는 한 알을 집으려다가 멈췄다. 그걸 본 자청비가 씨앗 몇 알을 손바닥에 올려 보여 줬다.

“먹는 곡식입니까?”

“심을 거예요.”

얼른 입을 다물었다. 먹을 생각부터 한 건 몰랐으면 했다.

“바닷물에 젖으면 못 심습니까?”

“모두 못 쓰게 된 건지부터 봐야죠. 지금은 좋은 것까지 같이 상하게 생겼고.”

그녀가 관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씻을 물하고 얕은 바구니 좀 빌려 줘요. 제가 어디 들고 달아나는 건 아니잖아요.”

관리가 이순신을 봤다.

이순신이 관리에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살피게 하시오. 패와 자루는 남겨 두고.”

자청비가 바로 물을 받으러 움직였다.

나는 일어나려다 허리를 붙잡았다. 밤새 힘을 쓴 탓인지 허리를 펴기가 어려웠다.

이순신이 말했다.

“자네는 밥부터 먹게.”

정말 가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마른 옷이 자루 아래 있었다.

자청비가 돌아보더니 내 옷을 털어 한쪽에 걸었다. 이미 축축했다.

“조금만 말려요. 마르는 동안 밥부터 먹으러 가요.”

“물건 확인은요?”

“씻어서 펴 놓고요. 그다음엔 제 밥도 먹어야죠.”

자청비는 물을 가져온 뒤 젖은 곡식을 골라 바구니에 나누었다. 덩어리를 함부로 비비지 않았고, 손상된 알은 따로 놓았다. 몇 알은 따로 천에 싸서 챙기고, 자루와 패는 관리가 보는 앞에 남겨 뒀다.

그제야 우리 둘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순신은 구조된 이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오겠다며 의원 쪽으로 향했다.


국밥집에는 빈자리가 있었다.

나는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자청비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더니 볕이 드는 자리를 골랐다.

“여기 두 그릇요.”

주인아주머니가 내 젖은 옷을 보더니 다가왔다. 나는 문턱 밖으로 발을 뺐다.

아주머니는 방석만 치웠다.

“거기 앉으면 돼요. 바닥은 닦으면 되니까.”

밀려날 줄 알고 옆구리에 붙였던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뜨거운 그릇이 놓였다. 김 사이로 고기 한 점이 보였다. 숟가락을 들다가 쓸린 손바닥이 아려 멈췄다.

자청비가 내 손을 봤다.

“손을 다쳤어요?”

“줄에 좀 쓸렸습니다.”

왼손으로 바꿔 들고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급하게 삼키려다 뜨거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자청비가 물잔을 밀어 줬다.

“아무도 안 뺏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더 말하지 않고 제 그릇을 당겨 왔다.

이번에는 불어서 먹었다.

선장의 추천은 틀리지 않았다. 배가 덜 고팠어도 먹을 만한 국밥이었다.

“한 그릇 더 주십시오.”

빈 그릇을 내밀자 아주머니가 국자를 들었다. 못 들은 척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어깨를 폈다.

자청비가 물었다.

“이름을 아직 못 들었네.”

“홍길동입니다.”

“길동 씨. 저 옷 세탁비는 줄게요.”

“말씀 기억하겠습니다.”

자청비는 바구니를 빌려 창가에 놓고, 챙겨 온 곡식 몇 알을 펼쳤다.

“그 정도가 그렇게 귀합니까?”

“받기로 한 씨앗은 더 많아요. 저건 상태를 보려고 먼저 받는 몫이고.”

“그럼 나머지를 기다리면…….”

“이것부터 살려 보고요.”

그녀가 갈라진 알을 골라 놓았다. 한 번 들여다본 것을 다시 집었다가, 이번에는 내려놓았다.

“다 버리고 다시 구할 형편은 아니라서.”

자청비는 율도의 제주 쪽에서 먼저 와, 이 항구에서 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농가와 씨앗을 바꾸는 일을 고려 교환소에 맡겼다고 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고려 말입니다. 그쪽으로 건너면 옛날로 돌아가는 겁니까?”

“아뇨. 서로 다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율도에 함께 사는 거예요. 저쪽도 여기처럼 오늘을 살고 있어요.”

“그쪽에 가면 고려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네. 저도 그 사람들과 거래하는 거고요.”

자청비는 갈라진 씨앗을 골라내며 말했다. 내게는 믿기 어려운 일이 이 사람에게는 평범한 거래였다.

더 묻고 싶었지만 자청비는 씨앗 하나를 버릴지 말지도 쉽게 정하지 못했다.

우선 자루가 어떻게 온 건지부터 듣자. 고려 이야기는 그 뒤에도 물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씨앗보다 먼저 오셨습니까?”

“여기서 미리 구할 물건도 있었어요. 씨앗은 수확이 끝나면 따로 보내기로 했고요.”

자청비가 품에서 접힌 자국이 닳은 종이를 꺼냈다.

“여기요. 어제 출발하기로 했어요. 길이 멀어서 아직 올 때가 아닌데, 저 자루만 밤새 먼저 온 거죠.”

“출발을 앞당겼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물어보러 간 거예요. 누가 싣고 왔는지.”

“저희 배도 간밤에 이상한 일을 겪었습니다.”

나는 같은 등불을 몇 번씩 지나고도 항구에 닿지 못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자청비의 표정이 굳었다.

“저는 그런 적이 없었어요.”

자청비가 창가의 씨앗을 다시 봤다.

“짐만 빨리 온 줄 알았는데, 배들도 이상한 일을 겪었네요.”

그때 부두에서 바구니를 가져다줬던 짐꾼이 우리를 찾았다. 관리가 자청비의 거래 약속서를 가져와 달란다고 했다.

마지막 국물까지 마시고 내 몫의 밥값을 냈다. 자청비가 대신 내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돌아왔을 때 젖은 자루는 탁자 위로 옮겨져 있었다.

관리 옆에 수염을 단정히 기른 사내가 서 있었다. 펼친 종이의 한 줄에 손가락을 대고 있었는데, 손톱 옆에 먹이 묻어 있었다.

“가져오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자청비가 약속서를 내밀었다.

웃옷은 볕에 걸려 있었다. 말리던 씨앗과 자루도 그대로였다.

먹 묻은 손의 사내가 나를 봤다.

“함께 거래하신 분입니까?”

“아닙니다. 옷을 빌려준 쪽입니다.”

옆의 관리가 설명했다.

“간밤에 구조를 도운 사람입니다, 정도전 나리.”

정도전. 조선을 세우는 데 나섰다는 옛사람의 이름이었다.

이름만 같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이름만 같은 분이 아니라, 정말 그 정도전이십니까?”

“맞소.”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봤다. 조금 전까지 옷을 빌려준 쪽이라고 대꾸한 상대였다.

그는 의자를 내주었다.

“지금은 이 항구의 일을 맡고 있소. 자루는 어디 있었소?”

“예?”

“간밤에 건진 자루 말이오.”

나는 뒤늦게 앉았다.

조선을 세웠다는 사람이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 있는지부터 묻고 싶었다. 선장도 옆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우선 간밤의 일부터 끝내자. 선장도 나도 밤새 제대로 쉬지 못했다. 차분히 생각할 시간은 그 뒤에 내면 됐다.

나는 선원이 자루를 내려놓은 자리와 널판에 걸린 것을 이야기했다. 직접 보지 못한 순간에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화물선 선장이 내 설명을 들으며 턱을 문질렀다. 손의 헝겊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 배에는 큰 자루만 실었소. 나루에서 수를 맞췄고.”

“선원이 개인적으로 받은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정도전이 말했다.

선장의 얼굴이 굳었다.

“내 사람들이 몰래 거래했다는 뜻이오?”

“그 가능성부터 확인하자는 뜻입니다. 잘못 실은 짐인지도 아직 모르니까.”

나는 입을 열려다 멈췄다. 저 사람에게 함부로 따져도 되는가.

선장이 다친 손을 움켜쥐었다. 저 손으로 다른 선원들을 건네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 했다.

“그런데 왜 먼저 선원들을 의심하십니까?”

정도전이 내 쪽을 봤다.

“아무도 싣지 않았다고 바로 적을 수는 없소.”

“그렇다고 누군가 숨겼다고 적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잠시 뒤 정도전이 붓을 내려놓고 종이를 돌려 보여 줬다.

실은 사람 확인 안 됨.

“아직은 이렇게 적었소.”

나는 그 글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내 말을 막을 줄 알았는데, 무엇을 적었는지부터 보여 줬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 종이를 돌렸다.

“자네가 본 위치를 여기 그려 주시오. 나는 이분들이 받은 짐부터 확인하겠소.”

나는 종이에 배 모양을 그리고 자루가 있던 자리에 점을 찍었다.

자청비가 그 사이에 약속서를 탁자 가운데 폈다.

“패를 묶은 끈을 풀어 봐요. 안에 출발 날짜를 적은 종이가 있어요.”

정도전이 끈을 풀자 얇은 나무패 두 장이 벌어졌다. 사이에는 기름 먹인 종이가 접혀 있었다.

종이에 적힌 날짜는 어제였다.

정도전이 바깥의 약속서와 안쪽 종이를 나란히 놓았다.

“예정 날짜와 같군요.”

“그래서 아직 올 때가 아니라고 한 거예요.”

“어제 보냈으면 빨리 온 것 아닙니까?”

내가 물었다.

정도전이 항로도를 내 쪽으로 밀었다. 고려 교환소와 조선 항구 사이의 선을 짚었다.

“두 땅 사이에는 경계가 있소. 아무 데로나 건널 수는 없고, 정해진 길목을 거쳐야 하오. 이 길은 가장 빨라도 사흘이오.”

“밤새 달려도요?”

“배가 밤낮으로 움직여도. 닫히는 길목을 기다리는 시간은 빼고도 그렇소.”

자루는 간밤에 이미 화물선에 있었다.

항로도에는 곧장 가로지를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먼저 날짜가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날짜를 잘못 적었다면요?”

“확인해야지. 날짜만 보고 하루 만에 운반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소.”

자청비는 흩어 놓은 씨앗을 봤다.

“그러면 나머지 짐도, 가져오기로 한 사람도 확인해야겠네요.”

나는 자청비를 봤다.

“그 사람도 아직 안 왔습니까?”

“아직 못 만났어요. 교환소 일꾼이 자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져다주기로 했어요. 이 자루는 그 사람이 먼저 품고 온다고 했고.”

정도전이 자청비 쪽으로 종이를 당겨 놓았다.

“언제 정한 약속입니까?”

“제가 제주를 떠나기 전이에요. 그 뒤에는 직접 소식을 못 받았어요.”

“그러면 그분이 실제로 출발했는지도 확인하겠습니다. 이름과 돌아올 집을 말씀해 주십시오.”

정도전이 이름 적을 자리를 비웠다. 자청비는 자루의 입구를 쥔 채 대답했다.

나는 탁자 가까이 의자를 당겼다.

부두 쪽에서 이순신이 돌아왔다. 다친 사람들은 의원에게 자리를 얻었고, 발을 다친 젊은이는 누이에게 연락을 보냈다고 했다.

나는 빈 의자를 밀어 주었다. 그가 앉는 동안 자청비가 같은 설명을 짧게 했다.

이순신이 물었다.

“그분은 다른 배로 올 예정이었소?”

“네. 이 자루를 맡긴 배가 따로 있어요.”

“그 배의 도착부터 알아봅시다. 나는 우리 선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본 배를 물어보겠소.”

정도전은 옆의 관리에게 이름을 받아 적게 했다. 돌아올 집에도 사람을 보내되, 아직 실종이라고 단정해 전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나는 걸어 둔 웃옷을 거뒀다. 볕이 닿은 어깨만 말라 있었다.

“배를 다시 살피실 거면 저도 갑니다.”

이순신이 내 손바닥을 봤다.

“줄 잡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게. 자네는 어디서 무엇을 봤는지 알려주면 되네.”

“그건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밥을 먹고 푹 잘 생각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바다에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 사람이 돌아올 항구는 여기였다.

그런데 사람보다 먼저, 그가 품고 있어야 할 짐만 건너왔다.

End of episode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