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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of Yuldo · Episode 4 · Korean original

바위 뒤에는 다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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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이요.”

자청비가 이름을 다시 말했다.

정도전은 도착한 배를 적은 장부를 넘겼다. 종이 끝에 눌어붙은 모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배 이름은 물새호. 흰 돛에 아래쪽만 푸른 천을 덧댔어요.”

장부에는 없었다.

배가 오지 않은 게 잘못은 아니었다. 약속대로 어제 떠났다면 아직 이틀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짐은 왔다.

나는 자루를 쳐다보다가, 자청비와 함께 윤석의 집으로 갔다.

문 앞에서는 작은 여자아이가 젖은 신을 뒤집고 있었다. 안에 고인 물을 털어 내더니 다른 한 짝도 똑같이 했다.

“아버지 계시니?”

아이는 내 뒤를 봤다. 자청비 뒤까지 살피고 나서야 고개를 저었다.

“모레 오세요.”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우리가 아버지와 같이 온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안에서 나온 여자가 아이를 자기 뒤로 보냈다. 손에는 꼬다 만 새끼줄이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자청비가 씨앗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먼저 밝혔다. 맡긴 자루가 다른 배에서 발견돼, 그동안 약속이 바뀐 적은 없는지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여자의 손가락이 새끼줄을 꽉 조였다.

“배가 잘못됐다는 말인가요?”

“그 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얼른 덧붙였다.

“어제 떠나기로 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더 일찍 왔다는 연락은 없었습니까?”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한 번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내가 들은 날짜만으로 괜찮다고 할 수는 없었다.

여자는 우리를 문 안으로 불렀다. 벽에 끼워 둔 약속 종이를 꺼내다가 두 번이나 떨어뜨렸다.

나는 더 묻지 않고 여자가 종이를 펼칠 때까지 기다렸다.

종이에는 돌아올 날짜와 받아 올 품삯이 적혀 있었다. 자청비가 가진 출발 약속보다 사흘 뒤였다. 나중에 소식을 받은 흔적은 없었다.

“아이 신을 사 오기로 했어요. 물이 자꾸 들어가서.”

여자는 문턱에 놓인 신을 보더니 종이를 다시 접었다.

“자루라도 보면 안 될까요? 남편이 짐 묶는 걸 제가 늘 도와줘서요.”

우리는 함께 부두로 돌아갔다.

아이는 이웃집에 맡겼다. 여자가 몇 번이나 돌아봤다. 나는 걸음을 늦췄다.


윤석의 아내는 자루를 보자마자 아는 물건이라고 했다.

안감에 반달 모양의 푸른 바느질 자국이 보였다. 자청비가 확인했던 그 자리였다.

“바느질은 제가 했어요. 나무패는 몰라도 이건 알아요.”

그 말로 윤석이 어제 출발했다는 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정도전은 자루가 맞다는 증언과 날짜를 따로 적었다. 여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종이를 돌려 보여 줬다.

이순신도 선원 하나를 데리고 돌아왔다. 눈썹이 그을린 사내였다. 간밤에 널판에 오르며 내 팔을 놓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사내가 내 얼굴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팔은 좀 어떻소? 내가 너무 세게 잡았지.”

“놓치지 않으셨으니 됐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소.”

“그래서 힘도 좋으셨군요.”

사내가 머쓱하게 웃었다. 윤석의 아내를 보고는 얼른 자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건 내가 곡식 위에 올려놨소. 불이 나기 전, 갑판에 굴러다니길래 젖지 말라고.”

“누가 놓는 건 봤습니까?”

“아니오. 밧줄 감아 둔 곳 옆에 있었소.”

“다른 배와 짐을 주고받은 적은?”

이순신이 물었다.

“없습니다. 새 선착장을 떠난 뒤엔 아무 배도 안 붙었습니다.”

이순신이 자루를 발견한 때의 위치를 짚어 보게 했다. 선원은 지도 위 작은 바위섬을 가리켰다.

나는 그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갈라진 바위. 붉은 천을 매단 기둥.

“저도 여길 봤습니다.”

“간밤에 계속 같은 데를 지났다는 곳인가?”

“예. 저 기둥이 보이면 그 뒤로 항구 불빛이 나와야 했는데, 자꾸 다시 기둥부터 나왔습니다.”

내가 탄 배의 선장도 불러 확인했다. 선장은 한참 지도를 보더니 항구 쪽으로 손가락을 밀었다.

“물이 여기로 빠질 때 겨우 나왔소. 그전에는 노를 아무리 저어도 소용없었고.”

이순신은 선장의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내가 본 흐름도 같소.”

정도전이 두 사람이 가리킨 곳에 작은 점을 찍었다.

윤석의 아내는 종이 위의 점을 바라봤다. 거기에 남편이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쪽을 찾아보시나요?”

이순신이 답했다.

“바깥에서 확인하겠습니다. 길을 모른 채 배를 더 넣지는 않겠소.”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작은 배 한 척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손바닥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내가 갔다가 또 돌아오지 못하면, 이 여자는 기다릴 사람만 늘어나는 셈이었다.

“어디서든 소식이 오면 집으로 전하겠습니다.”

정도전은 여자의 집 위치를 적고 담당 관리에게 읽어 보게 했다. 새 소식이 없어도 저녁마다 어디까지 확인했는지 알리겠다고 했다.

그제야 여자가 자루에서 손을 뗐다.


바위섬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긴 장대를 짊어진 사내가 있었다.

그는 장대를 땅에 꽂고 눈높이에 묶인 실을 당겼다. 비스듬히 서 있던 막대가 반듯해졌다.

이순신이 불렀다.

“장영실 선생.”

“잠깐만요. 지금 놓으면 다시 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다렸다.

사내가 나무판에 선 하나를 긋고 돌아봤다. 이순신은 선착장과 물길을 재는 일을 맡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가 적은 수치보다 바다를 향해 맞춰 둔 실부터 봤다.

“간밤에 배가 같은 곳을 맴돌았다지요. 어느 쪽이었습니까?”

나는 바다를 가리켰다.

“저 바위 오른쪽이요. 등불 단 기둥이 앞에 보였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오른쪽입니까, 배에서 보던 오른쪽입니까?”

내 손이 멈췄다.

배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쪽을 향하고 있었다.

“배에서요. 여기서는 반대입니다.”

장영실은 아무 말 없이 나무판의 점을 옮겼다. 잘못 말했다고 타박하지 않아서 오히려 얼굴이 달아올랐다.

“새 선착장 때문에 재고 있던 겁니다. 저 기둥과 바위가 보이는 자리를 며칠째 옮겨 가며 확인했어요.”

그가 발밑의 돌을 가리켰다. 먹으로 줄을 그어 둔 평평한 돌이었다.

“어제도 여기서 봤습니까?”

자청비가 물었다.

“봤지요. 해 질 때까지는 기둥도 바위도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밤에는 밑의 부두에서 물 높이를 쟀고요.”

“그럼 밤에는 잘 모르는 거네요.”

“그래서 오늘은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장영실이 나를 봤다.

나는 양손을 내보였다.

“힘쓰는 일은 못 합니다.”

“보고 말해 주면 됩니다.”

“오늘은 보는 일만 맡는군요.”

자청비가 장영실 옆에 놓인 여분의 장대를 들었다. 나는 바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섰다.

낮 동안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바위 뒤로 갈매기가 날았고, 기둥의 천은 바람에 흔들렸다. 장영실은 밑에 있는 사람과 깃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물 높이를 적었다.

나는 눈을 비볐다.

나무판 위의 먹줄이 두 개로 겹쳐 보였다. 고개가 한 번 꺾이고 나서야 이순신에게 붙들렸다.

“자네는 자야겠네.”

“조금만 더 보면…….”

“잘못 보고 말하면 우리도 잘못 찾네.”

그 말에는 버틸 수가 없었다.

자청비도 씨앗을 뒤집으러 돌아갔다. 나는 부두 창고의 빈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자 정도전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려에서 온 물건을 살피고, 내 말까지 받아 적던 사람. 배를 타기 전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은 놀랄 때마다 다른 일이 생겼다. 이제야 조용한데,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밖에서 누가 짐을 내려놓았다. 그 소리를 끝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내 코앞에 밥그릇이 놓였다.

“안 일어나면 먹어요.”

자청비였다.

나는 그릇부터 붙들었다.

그녀는 내가 빌려줬던 웃옷을 옆에 내려놨다. 흙 묻은 자리까지 빨아 놓았는데 소매 한쪽만 축축했다.

“이건 말려 입어요. 언덕에서는 바람이 세요.”

“세탁비는요?”

“밥.”

나는 그릇을 내려다봤다. 따지기 전에 한 숟갈 더 먹었다.

이순신은 어제 오후에도 별다른 일을 못 봤다고 했다. 상처를 감은 팔은 여전히 몸에 붙여 두고 있었다.

내 허리도 뻐근했다. 다만 눈을 감고 걷지는 않아도 됐다.

언덕으로 올라가자 장영실이 물때를 적은 판을 내밀었다.

“물이 가장 많이 빠질 때가 가까웠습니다. 오늘은 저 바위 밑까지 봅시다.”

바닷물이 빠지며 검은 바위의 아래쪽이 드러났다.

기둥의 천은 항구 쪽으로 날렸다. 나는 천 아래에서 갈라진 틈을 찾았다. 이틀 전 밤, 배 위에서도 저 틈이 보였었다.

“저기…….”

바위틈으로 가느다란 가로줄이 보였다.

처음에는 떠내려온 나뭇가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줄 아래에 짧은 기둥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다리 난간이었다.

나는 눈을 세게 감았다가 떴다.

틈 안쪽에서 갈대가 흔들리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부는 쪽과 반대로.

“바위 뒤에 다리가 있습니까? 어제는 바다뿐이었는데.”

장영실이 나를 밀치듯 옆으로 다가왔다.

“어디요?”

나는 손을 뻗었다. 그가 내 팔을 따라 시선을 맞췄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보입니다.”

그제야 내가 입을 벌린 채였다는 걸 알았다.

자청비가 몇 걸음 아래로 내려갔다가 곧 올라왔다.

“밑에서는 안 보여요.”

이순신은 바다부터 살폈다. 빈 고깃배 하나가 물살을 따라 바위 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어부는 배가 묶인 줄을 풀어 더 깊은 쪽으로 옮길 참이었다.

“줄 풀지 마시오!”

그가 언덕 아래로 외쳤다.

어부가 고개를 들었다. 이순신이 두 팔을 벌려 멈추라는 뜻을 보였다가 다친 팔을 내렸다.

나는 대신 팔을 흔들었다.

어부가 뒤늦게 물을 봤다. 바위 옆에서 흐름이 꺾이고 있었다. 그는 풀던 줄을 말뚝에 다시 감았다.

다리 난간 위로 무언가 지나갔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갈대보다 짙은 것이 한 번 움직였다.

나는 바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누가 있습니다.”

“뛰어 내려가지 말게.”

이순신이 말했다.

내 발끝이 언덕 아래를 향해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지금 내려가 봐야 그 틈을 놓친다. 무엇이 있는지 끝까지 보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했다.

장영실은 장대의 실을 맞추고 나무판에 선을 그었다. 자청비는 내가 보는 쪽을 지켜봤다.

물살이 다시 항구 쪽으로 흘렀다.

난간이 끊겼다. 갈대도 보이지 않았다.

틈 안에는 평소처럼 먼바다가 있었다.

“없어졌습니다.”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장영실은 아까 그린 선을 지우지 않았다.

“물 위에 비친 건지, 정말 저 너머에 있는 건지 더 봐야 합니다. 누구를 태워 보내 확인할 일은 아닙니다.”

자청비가 내 소매를 놓았다. 붙들고 있었던 줄도 몰랐다.

나는 손바닥이 아플 만큼 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사람이었다면, 내가 보고만 있는 동안 어디로 간 걸까.


정도전은 우리가 따로 설명한 내용을 하나씩 맞춰 봤다.

그림자 같은 것이 움직였다는 말은 내 증언에만 남겼다. 다른 사람은 확실히 못 봤다고 했다.

“저 바위에는 원래 다른 땅으로 건너가는 길목이 없소.”

정도전은 바위 쪽 물길로 드나드는 배를 멈추게 했다. 항구 안쪽 나루는 따로 안전을 확인하기로 했다.

부두에 막대가 세워졌다. 걸쳐 놓은 줄 뒤로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언덕에서 가져온 나무판을 내려놓았다. 장영실이 그린 난간 옆에 작은 빈자리가 있었다.

거기에 사람을 그리려다가 그만뒀다.

움직이는 것을 봤을 뿐이었다. 사람인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그림에 넣으면 본 것처럼 남을 터였다.

멀리서 작은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며 뛰어왔다. 나는 몸을 돌렸다.

아이는 내 옆을 지나, 막 짐을 내려놓은 다른 사내에게 안겼다.

나는 잠시 서 있다가 윤석의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확인한 것과,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을 따로 말해 줘야 했다.

End of episode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