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배는 안 타겠습니다.”
여자는 짐을 제 발 앞에 당겨 놓았다. 배의 일꾼이 답답하다는 듯 널판을 두드렸다.
“여기 적힌 곳까지 모시는 배예요. 다른 데는 안 갑니다.”
“그러니까 안 탄다고요.”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종이를 봤다. 여자가 어디서 왔는지, 어느 배를 탈지 적혀 있었다.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북쪽 도자기 굽는 마을이요. 동생이 거기 있어요.”
종이에 그 마을 이름은 없었다.
“그럼 이쪽 배가 아니군요.”
내가 일꾼을 보자 그는 어깨를 움츠렸다.
“저도 알아요. 그런데 그쪽 배가 오늘 안 옵니다. 이분은 계속 보내 달라고 하고.”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단순히 문을 열어 주면 끝날 일은 아니었다. 문 너머에 탈 배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여자는 배 대신 언덕길로 나가려 했다.
나는 주방 옆에서 그녀와 다시 만났다. 밤새 잠을 못 잤는지 눈이 붉었다.
“걸어가겠습니다. 돌아가도 되니 길만 알려 주세요.”
곁에서 듣던 정도전이 짐의 무게를 살폈다.
“동행이 있소?”
“없어요.”
“밤에 멈출 곳은?”
“가면서 찾으면 되지요.”
여자가 말을 마친 뒤 우리를 번갈아 봤다.
“두 분도 보내 주지는 않으실 건가요?”
그 물음에 나는 얼른 대답하고 싶어졌다.
“오늘 안에 갈 방법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더 기다리라고 하면 혼자 나서실 것 같습니다.”
나는 정도전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여자를 잠깐 그늘에서 기다리게 하고 내 쪽으로 돌아섰다.
“오늘 떠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겠소. 다만 지금은 쉬어 갈 집도 모르니 서두르다가 더 늦어질 수 있소.”
나는 여자를 돌아봤다. 그늘로 옮겨 놓은 짐이 벌써 무릎 위에 올라와 있었다. 우리 말이 끝나면 바로 일어날 태세였다.
정도전이 길 쪽을 봤다.
“우리가 막을 일은 아니오. 혼자 떠나기 전에 동행부터 구해 봅시다.”
정도전은 오늘 떠나는 행렬을 알아보러 갔다. 나는 연을 따라 동쪽 창고로 향했다. 도자기 마을에 다니는 장작 장수들이 어제 짐을 풀었다고 했다.
장작 장수는 바로 승낙하지 않았다.
빈 수레가 있어도 동생의 집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지는 몰랐다.
“거기 문 닫혔으면 내가 이 사람을 어디로 데려갑니까?”
그가 물었다.
나는 여자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가 막혔다. 내가 아는 것은 그녀가 동생에게 가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연이 같은 마을에서 온 그릇 장수를 찾아냈다. 나는 두 장수와 함께 여자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릇 장수는 동생의 이름을 듣고 집 옆의 깨진 큰 항아리까지 기억해 냈다. 여자는 그 말을 듣고서야 짐을 내려놓았다.
가는 길에는 그와 함께 묵고, 동생이 집을 비웠으면 그가 아는 거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짐을 들어 수레로 옮기려 했다. 장작 장수가 손바닥을 폈다.
“잠깐, 삯부터 정합시다. 어디까지 모셔다드릴지도요.”
내가 잡은 보따리 위로 여자의 손이 얹혔다. 그녀는 직접 주머니를 풀었다.
정도전은 양규 쪽 짐을 옮기는 사람들과 돌아왔다. 장작 수레는 그들과 앞길을 함께 가고, 갈라진 뒤에는 그릇 장수가 동행하기로 했다.
여자가 풀어 놓은 돈은 조금 모자랐다. 나는 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정도전의 다음 말을 들었다.
“이곳에서 며칠 일하셨다 했지. 아직 받지 않은 몫이 있는지 연 씨가 알아보고 있소.”
연이 여자가 일한 날짜를 적은 종이와 품삯을 가져왔다. 여자는 동전을 손바닥에 펼쳤다가 하나씩 골라 놓았다. 내 주머니에서 꺼낼 돈은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자 연이 흘끔 보고 웃었다. 모른 척해 주는 쪽에 가까웠다.
여자는 돈을 내며 말했다.
“갚겠다는 말 안 해도 되겠네요.”
“일한 것을 받으셨으니까요.”
연이 답했다.
여자가 마지막 동전을 장작 장수의 손에 놓았다. 내 쪽으로 기울었던 보따리도 자기 무릎으로 끌어당겼다.
점심 전에 수레가 나왔다.
자청비가 먹을 것을 조금 싸 주었다. 여자는 그걸 받다가 우리에게 폐를 많이 끼쳤다고 말했다.
“앞으로 가고 싶다는 말 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
“말이 오래 걸린 건 아닙니다.”
내가 답했다.
“저희가 알아듣고 준비하는 데 오래 걸렸지요.”
그녀가 웃었다. 이번에는 피곤해서 억지로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수레에 짐을 싣자 나루의 일꾼이 다가왔다. 어젯밤 다른 배를 타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나루지기께 여쭤봤습니까?”
여자의 웃음이 멎었다.
나는 수레 옆에 섰다.
“이분이 떠나겠다고 하셨습니다. 갈 곳과 동행도 확인했습니다.”
“제가 막는다는 게 아니라, 보내기로 한 곳이 있는데…….”
정도전이 나루지기에게 직접 이야기하자고 했다. 마침 위쪽 배를 보고 내려온 나루지기가 일꾼의 설명을 들었다.
그는 여자의 짐과 수레를 봤다.
“원래 계시던 쪽으로 가시면 더 편하실 텐데요.”
“지금은 동생에게 가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지내실 수 있습니까?”
나는 동행을 구했다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여자가 나루지기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잠잘 곳도 있고, 제 돈으로 삯도 냈어요. 동생이 집에 없으면 함께 가는 분이 기다릴 곳을 알려 주시기로 했고요.”
내가 대신 할 말은 없었다. 다 듣고 나서도 나루지기는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나루지기는 수레 뒤에서 짐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 내게 물었다.
“이 한 분을 보내는 데 몇 사람이 나섰습니까?”
나는 대답하려다 장작 장수를 봤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원래 가는 길입니다. 돈 받고 태우는 거고요.”
나루지기의 시선이 다시 내게 왔다.
“다음 분에게도 이렇게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다음 분은 다른 데로 가고 싶으실 수도 있지요.”
나는 여자가 묶어 놓은 짐을 받쳐 주었다.
“하지만 이분은 갈 수 있습니다. 나중에 올 분 때문에 오늘 못 보내지는 않겠습니다.”
정도전이 수레바퀴 앞의 받침을 치웠다. 나루지기는 그를 보다가 한쪽으로 비켰다.
“가시는 길이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수레에 올랐다. 수레바퀴가 흙 위에 두 줄을 남겼다. 바리데기는 갈림길까지 같이 걸어 주겠다고 했다. 그릇 장수가 앞에서 손을 들었다.
수레가 내 옆을 지났다. 여자가 손을 내밀어 내 손바닥을 한 번 쳤다. 짝, 하고 작은 소리가 났다.
“집에 가요.”
그녀가 웃었다. 나는 배웅하는 사람이 더 없는 데까지 걸어가 손을 흔들었다. 처음으로 나루지기의 허락보다 떠나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정도전이 내 옆에 와서 빈 손을 봤다.
“자네 돈주머니도 지켰고.”
“그것까지 보셨습니까?”
“다음 사람도 올 테니 아껴 둡시다.”
나는 허리춤을 눌러 봤다. 돌아오는 길에 내일 떠나는 수레도 물어 두었다.
저녁에는 창고 문을 마저 달았다.
문이 끌리지 않고 닫히자 연이 두 번 열었다 닫았다. 나는 괜히 기침했다. 잘한 일은 좀 오래 봐도 좋았다.
“내일도 고칠 게 생기겠는데요.”
“고치자마자 고장 낸다는 말입니까?”
“아뇨. 잘하니까 다른 걸 맡기겠다는 말이에요.”
나는 낮의 장작 장수보다 연이 흥정에 더 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창고 안에서 작은 목록을 챙겼다. 상류로 보내는 수리 부품이라고 했다. 새로 만든 물길을 손보는 데 쓸 것들이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 물길입니까?”
“여기보다 위요. 저는 짐만 맞춰 드려서 정확한 구조는 몰라요.”
연이 목록을 펼쳐 줬다. 무게와 수량만 있고 설치하는 곳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때 아까의 일꾼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
“이 사람 자리도 그대로 두랍니다. 나중에 필요할 수 있다고.”
나는 그 이름을 알아봤다. 오늘 동생에게 떠난 여자였다.
종이에는 그녀가 거절한 목적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떠나셨는데 왜 그대로 둡니까?”
일꾼은 자기도 전달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연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아버지에게 물어보겠다고 말하는 얼굴에 낮의 웃음이 없었다.
떠난 사람을 장부에서 미처 지우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한 번 더 확인하면 끝나는 일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다가, 길을 떠나는 여자를 오래 바라보던 나루지기의 눈을 떠올렸다.
연이 종이 위의 목적지에 선을 긋고 실제 떠난 곳을 적었다.
“이쪽이 맞아요. 제가 보내는 것 봤어요.”
일꾼이 난처하게 종이를 받았다.
“앞으로 출발 명단하고 상류 물자 목록은 나루지기께 먼저 보여드리랍니다. 밖에서 물어도 바로 내주지 말고.”
나는 막 닫아 본 창고 문에서 손을 뗐다.
수레 하나를 밖으로 보냈더니, 안에서 문 하나가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