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사람의 발이 허공에 떴다.
나루지기는 난간을 넘으려던 사내의 팔을 놓지 않았다. 배가 옆으로 밀리면서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 물에 잠긴 문틀을 붙든 그의 왼손이 떨렸다.
“그 줄, 지금 풀면 안 됩니다!”
이순신이 물가의 일꾼을 불렀다. 사내는 놀라 멈췄다. 이순신이 줄을 대신 받아 옆 말뚝으로 걸었다.
“배 머리를 이쪽으로 돌리시오. 뒤는 제가 받겠습니다.”
나루지기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설명할 틈도 없는데 둘은 같은 배의 서로 다른 끝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낮은 발판으로 내려가 나루지기가 잡은 사람의 허리를 받쳤다. 무거웠다. 두 발이 발판에 닿자 사내가 목 안에서 숨을 토했다.
“위로 가십시오. 천천히.”
그가 기듯이 올라갔다.
나루지기는 그제야 오른손을 폈다. 손가락에 붉은 자국이 났다. 왼손은 여전히 문틀을 잡고 있었다.
“안에 어른 둘과 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내가 배를 봤다. 아이를 안은 여자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배의 노인이 자기 다리를 두드리며 무언가 말했다. 배가 기울수록 여자는 아이를 더 세게 안았다.
“저 문이 내려가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물었다.
“물길이 좁아집니다. 배가 걸립니다.”
나루지기는 짧게 답했다.
그의 왼손 밑에서 걸쇠가 밀리고 있었다. 문 무게를 받치던 끝이 빠지면 저 팔로는 못 버틴다.
“받칠 것을 가져오겠습니다.”
“너무 굵으면 안 들어갑니다. 손목보다 가는 것.”
위에서 연이 마른 나무쐐기 두 개를 던졌다. 나는 하나를 받았고 하나는 발판에 떨어졌다. 자청비가 줄에 묶어 내려 준 망치로 쐐기를 박았다.
첫 쐐기가 갈라졌다.
나루지기의 어깨가 아래로 꺾였다. 나는 무심코 그의 팔을 잡으려 했다가 멈췄다. 팔을 당기면 문틀에서도 손이 떨어질 수 있었다.
“하나 더!”
두 번째 쐐기를 반대쪽 틈에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끝까지 박지 않고, 이순신이 배를 당기는 때에 맞춰 조금씩 눌렀다.
배가 바로 섰다.
여자가 아이를 먼저 내밀었다. 물가에 선 바리데기가 아이를 받아 안았다. 노인은 일꾼 둘에게 부축받아 나왔다. 마지막으로 여자가 올라왔다.
배가 빈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루지기가 손을 뗐다.
그는 그대로 발판에 앉았다. 젖은 손이 제 무릎 위에서 떨렸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잠깐 같이 숨을 골랐다.
연은 아버지를 혼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펴게 하고 박힌 가시를 뺐다. 나루지기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깊어요?”
“이번 것은 안 깊어요.”
연은 천을 감으며 대답했다. ‘이번’이라는 말에 나는 나루지기의 팔을 다시 봤다. 소매 아래에 이전에 다친 자국이 여럿 있었다.
바리데기는 아이를 엄마에게 돌려주었다. 여자는 아이의 등을 문지르면서도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루지기가 그들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오늘은 여기서 주무세요. 타고 온 배는 내일 보겠습니다.”
“짐을 다 두고…….”
“배는 안 떠납니다. 내일 밝을 때 같이 꺼냅시다.”
그는 이순신을 돌아봤다.
“방금 줄을 바로 풀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문에 걸린 배를 밀어내는 솜씨가 익숙하시더군요.”
이순신이 답했다.
“몇 번 당해 봤습니다.”
나루지기는 지친 얼굴로 웃었다. 자기가 사람을 살린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아직 남아 있는 일꾼에게 배 아래에 불을 놓지 말라고 일렀다. 새어 나온 기름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밤늦게 우리는 주방 옆에 모였다.
내가 가져온 나무 표지를 내놓자 나루지기의 웃음이 사라졌다. 윤석과 물새호의 일을 듣는 동안 몇 번이나 위치를 물었다.
“살아 있습니까?”
그가 먼저 물은 것은 그것이었다.
“셋 모두 돌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내 대답에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안도하는 모습은 꾸민 것 같지 않았다.
“이 표지는 여기서 준 게 맞습니다.”
그는 물건을 피하지 않고 자기 앞에 놓았다.
“바뀌는 물길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들도록 나눠 준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쪽에 갇혔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 부분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저희도 함께 보겠습니다.”
나는 그가 싫어할까 생각하면서도 덧붙였다.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밝으면 표지를 맡은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말을 꺼낼 자리는 생겼다.
다음 날 나루지기는 약속한 사람을 데려왔다.
마른 손가락에 먹물이 밴 사내였다. 그는 배에 나눠 준 표지의 그림과 날짜가 적힌 장부를 펼쳤다. 이순신은 표지보다 당시 물이 흘렀다는 방향부터 물었다.
“그 날에는 남쪽 얕은 길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사내가 지도에 손가락을 댔다.
윤석의 설명과는 달랐다. 여기서는 길이 잠깐 짧아진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배가 기울고 갑판이 다른 곳과 맞닿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길이 짧아졌다고 기록한 근거는 무엇이오?”
정도전이 물었다.
“다녀온 사람이 빨리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그 기록에 없겠군.”
사내의 얼굴이 굳었다.
정도전이 빈 종이를 장부 옆에 놓았다.
“떠난 배를 모두 적어 주시오. 돌아온 배에는 표시하고.”
사내가 붓을 들었다. 정도전은 첫 이름 옆에 표시가 붙을 때까지 기다렸다.
“표시 없는 배부터 찾아야겠소.”
나루지기는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 어제 감은 천에 작은 핏점이 배어 있었다.
“사람들을 보내 주려다 생긴 일입니다.”
그가 말했다.
“보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같은 곳을 맴돌다 지쳐 오는 사람도 있고, 건너편에 식구가 있는데 저만 남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밖에서 아이가 어머니의 치마를 잡아당겼다. 어젯밤 배에서 끌어올린 아이였다. 손에 든 빵을 나루지기에게 보여 주자, 그가 잠깐 웃었다.
“돕는 일과 길을 확인하는 일을 같이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그는 잠깐 나를 보다가 빈 의자를 가리켰다.
“함께 보시지요. 다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아 주십시오.”
나는 표지의 그림과 실제 표지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물었다. 종이에는 화살표 하나뿐인데, 나무쪽 뒷면에는 줄을 거는 두 구멍이 있었다.
기록하던 사내는 운반 중 떨어지지 않게 새로 뚫은 것이라고 했다. 언제 바뀌었느냐고 묻자 작업 날짜를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나루지기가 곁에서 말을 보탰다.
“만드는 사람, 나눠 주는 사람, 배를 받는 사람이 다릅니다. 제게 물으셔도 모르는 것은 있습니다.”
나루지기에게서 장부를 쓰는 사내로 눈을 돌렸지만, 그도 작업 날짜를 찾고 있었다.
나는 표지를 나눠 주는 일을 잠깐 멈추자고 했다.
나루지기가 문을 열었다. 밖에서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어제 아이를 데리고 온 분입니다. 이 물길을 쓰지 않으면 닷새를 더 돌아야 합니다. 그동안 머물 자리도, 먹일 곡식도 필요하지요.”
그는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길동 씨가 그것까지 맡겠습니까?”
아이의 어머니가 우리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표지가 위험하다는 것까지는 알았다. 멈춘 뒤 어디로 보낼지는 아직 몰랐다.
정도전이 내 옆에 섰다.
“돌아가는 배부터 알아보겠소. 우선 이 기록을 옮겨 적어 주시오. 지금까지 돌아온 배와 없는 배를 맞춰 봅시다.”
나루지기가 종이를 내줬다. 나는 손을 내밀어 받았다. 다음번에 멈추라고 말할 때는, 기다리는 사람 앞에서도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그날과 다음 날, 나는 나루에서 일을 거들었다.
문짝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래 경첩만 고치면 될 줄 알았는데 문틀까지 기울어 있었다. 처음 온 날 판자를 받쳤던 사내가 옆에서 나무를 잡아 주었다.
“혼자 하면 안 됐겠는데요.”
내가 말하자 그가 웃었다.
“그래서 내일도 있냐고 물었지.”
나는 뒤늦게 일꾼을 잘 골랐다는 뜻을 알아듣고 웃었다.
자청비는 주방의 곡식을 살펴 젖은 자루를 따로 뺐다. 바리데기는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직접 물었다. 정도전은 출발하는 사람과 받는 곳을 이어 줬고, 이순신은 사공들과 물 높이를 재는 자리를 정했다.
그 사이 나루지기는 계속 움직였다.
배의 바닥이 샌다고 하면 내려가 손을 넣었다. 술에 취해 배에 오르려는 사람은 쉬었다 가게 했다. 아이를 업고 걷는 여자에게는 물가 대신 언덕길을 안내했다.
해 질 무렵에는 저녁 먹을 사람 수를 확인했다. 사람이 늘었다는 말을 듣자 자기 앞에 놓인 그릇을 들고 일어나 주방으로 가져갔다.
그것을 연이 보고 불렀다.
“아버지 것도 남겨 뒀어요. 안 그러셔도 돼요.”
나루지기는 그제야 제 그릇을 도로 들고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물새호의 표지를 주머니 안에서 만졌다. 잘못된 일을 찾으러 왔는데, 잘하는 일이 자꾸 눈에 띄었다. 어느 한쪽만 본 척하면 쉬웠을 것이다.
이순신이 내 옆에 앉았다.
“그날 손을 놓지 않더군요.”
내가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에 살았지.”
“정말 길을 잘못 본 거라면, 고칠 수도 있겠지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아야지.”
이순신은 나를 돌아봤다.
“나도 그래서 사공들과 다시 재 보고 있네. 표지가 가리키는 쪽을.”
나는 주머니에서 표지를 꺼냈다. 이순신은 화살표 아래 묻은 흙을 털어 냈다. 그의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에서 패인 선이 선명해졌다.
저녁을 마치고 물가로 갔을 때, 새 배에 오르려던 여자가 짐을 도로 내려놓고 있었다. 배 옆의 일꾼이 무언가 설명했다.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거기로는 안 간다니까요.”
그 목소리가 물소리 사이로 또렷하게 들렸다.
나루지기는 다른 배의 줄을 묶느라 듣지 못했다. 나는 여자가 내린 짐 옆에서 멈췄다.
그녀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갈 곳이 있는데, 타라는 배가 그쪽으로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