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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의밤 · 15화

돌려받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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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은 앉기 전에 손을 내밀었다.

“제 빗 돌려주세요.”

아침 밥상이 아직 치워지지 않은 방이었다. 나루지기는 딸의 손을 보다가 우리 얼굴을 차례로 봤다.

“고치는 중이다.”

“어디서요?”

그의 대답이 늦었다.

연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다리가 아파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의자를 당겨 그녀 곁에 놓았다. 연은 앉아서도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루지기가 옆방으로 들어갔다. 돌아왔을 때 손에 나무빗이 있었다. 어제 연이 말했던 짧은 빗살, 반들반들한 손잡이였다.

그녀는 빗을 받아 천에 쌌다.

“어디에 쓰려고 하셨어요?”

나루지기가 문 쪽을 봤다. 정도전이 먼저 어제 창고의 일을 꺼냈다.

사람을 붙잡고 가두려 했다는 말에 나루지기는 호위 책임자를 불렀다. 사내는 우리가 물자를 뒤졌다고 했다. 나는 어디까지 들어갔고 무엇을 물었는지 차례로 말했다. 연은 작업자가 보는 앞에서 목록을 확인하려 했다고 보탰다.

나루지기는 책임자에게 더는 사람을 붙잡지 말라고 했다.

“확인할 것이 있으면 내게 데려오시오. 가둘 일은 아니오.”

책임자는 고개만 숙였다. 문을 나가기 전 내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갔다.

문이 닫히자 연이 다시 물었다.

“제 빗은요. 무슨 확인을 하려고 가져가셨어요?”


나루지기는 한동안 손을 맞잡고 있었다.

처음 온 밤, 사람을 끌어올릴 때는 망설임이 없던 손이었다. 지금은 두 엄지가 맞물린 손가락 위를 번갈아 문지르고 있었다.

“네가 다치기 전의 집을 찾았다.”

연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바로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옛집이 다른 곳에 남아 있다는 말일 수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먼 길이 눈앞에 붙기도 했다.

나루지기가 말을 이었다.

“집이 있던 자리가 아니다. 네가 아직 다치지 않았던 날의 집이다.”

방 안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선 옆에 고려가 있어도 과거로 가는 건 아니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알아듣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다치기 전의 날이라니.

나는 연의 지팡이에서 나루지기로 눈을 옮겼다.

“이미 다녀오셨다는 뜻입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그 대답에 나는 숨을 조금 내쉬었다.

“지금은 희미하게 닿는 자리를 찾았을 뿐입니다. 본 수문을 제대로 맞추면 그날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연이 천에 싼 빗을 무릎 위에 놓았다.

“그걸 찾는 데 제 빗을 쓴 거예요?”

“그 집에서 오래 썼으니까. 네가 기억하는 것과 물건에 남은 자리가 맞으면…….”

“왜 저한테 안 물어보셨어요?”

나루지기는 딸을 봤다.

“확실해진 다음 보여 주고 싶었다.”

“저는 모르고 있어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어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무엇을 다르게 생각했는지는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연의 목소리가 잠깐 흔들렸다.

“저도 낫고 싶어요.”

나는 그녀의 무릎에 놓인 손을 봤다.

“안 아프면 좋겠어요. 오래 걸어도 되고, 밤에 잠도 잘 자면 좋겠어요. 그 마음까지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세요.”

그녀가 아버지를 똑바로 봤다.

“그러니까 먼저 물었어야죠.”

나루지기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가 멈췄다. 딸의 무릎으로 가던 손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연은 그 손을 보면서도 빗을 감싼 천을 풀지 않았다.


나는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그날을 바꾸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나루지기가 나를 봤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연 씨가 다치지 않는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날 같이 있던 사람도 있을 테고, 그 뒤에 연 씨를 만나서 여기까지 온 사람도 있을 겁니다.”

내 말이 길어져 잠깐 멈췄다.

“그 사람들의 지난날도 같이 바뀌는 겁니까?”

나루지기는 대답 대신 창밖을 가리켰다. 밥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저 사람들 중에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잃은 날을 되찾을 수 있다면 지금처럼 기다리게 두지는 않아도 됩니다.”

“제 질문은 저분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다시 물었다.

“우리가 바꾸려 하지 않은 사람의 삶도 바뀌는지 알고 싶습니다.”

나루지기는 턱을 굳혔다.

“길을 제대로 맞추면 좋은 쪽으로 돌아갈 겁니다.”

‘좋은 쪽’이라는 말이 쉽게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이름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날. 그가 내게 그런 날을 보여 준다고 했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을까.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붕대 밑이 아파서야 손가락을 폈다.

이순신이 탁자 위의 표지를 가까이 당겼다.

“이 표지를 따라간 배에서 사람을 건져 왔습니다. 아직 지금의 길도 안전하게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본 수문을 여는 일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나루지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구호도 멈추라는 뜻입니까?”

“그것까지 멈출 이유는 없소.”

정도전이 답했다.

“문제의 표지를 따라 새로 보내는 일은 멈추고, 확인된 길로 배와 사람을 보내면 되오. 밥과 잠자리는 계속 마련합시다.”

나는 그제 동생에게 떠난 여자를 떠올렸다.

“그분처럼 스스로 고른 길로 가는 사람까지 기다리게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윤석의 편지를 그의 앞에 폈다.

“이 사람은 확인된 길로 집에 갔습니다. 따님이 손을 안 놓았답니다.”

나루지기는 글보다 모서리의 작은 먹자국을 오래 봤다.

“운이 좋았군요.”

“사공이 길을 보고, 병사들이 함께 갔습니다. 그제 수레를 타신 분도 마찬가지고요.”

나는 밖에 기다리던 사공을 불렀다. 정도전과 의논해 둔 사람이었다. 그가 문 앞에서 모자를 벗었다.

“돌아가는 배는 제가 받겠습니다. 다만 그 표지를 쓰는 배는 더 못 몰겠습니다. 저도 집에 갈 사람이니.”

나루지기가 나를 봤다.

“여럿이 와서 정하자는 겁니까?”

“함께 태울 사람들 앞에서 물어보자는 겁니다. 위험한 길인지 모른 채 타게 하지는 마십시오.”

연이 빗을 품에 넣고 일어섰다. 사공 뒤에 서서 아버지의 답을 기다렸다.

나루지기는 마침내 표지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사람을 새로 보내는 일은 멈추겠습니다. 대신 직접 보십시오.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나는 표지를 거뒀다. 문 앞의 사공도 그제야 모자를 도로 썼다.


그 뒤 닷새는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는 새 표지를 사용하는 배를 내보내지 않았다. 기존에 다니던 길을 아는 사공들과 배가 다닐 길과 차례를 정했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왜 늦어지는지 설명했다.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동생에게 떠난 여자처럼 다른 동행을 찾았다.

나는 하루쯤이면 수문 기록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창고 앞의 호위 둘이 상류로 떠난 뒤에도 나루지기는 작업이 끝나면 보여 주겠다는 말만 했다. 여기 남은 것은 이미 본 물자 목록뿐이었다.

나루지기는 새 표지를 나눠 주지 않았다. 대신 작업 배를 보내고, 돌아오면 밤늦게까지 짐을 셌다. 주민을 보내는 일은 멈췄지만, 수문을 만드는 일은 멈추지 않은 것이다.

이순신은 날마다 현재 물길을 확인했다. 바리데기는 서쪽 길로 오가는 사람들이 실제 어디로 나오는지 살폈다. 그 길은 원래 마을끼리 걷던 길이어서, 표지를 멈췄다고 다 막을 곳은 아니었다.

나는 바리데기와 하루 그 길을 걸었다. 비탈 끝에 마른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뒤로 작은 선착장이 나왔다. 장을 보러 가는 노인이 우리를 앞질렀다. 바리데기는 노인에게 돌아오는 길에도 같은 나무를 보았는지 물었다.

“늘 보지. 비 오면 그 밑에서 쉬지는 마오. 가지가 떨어져.”

노인이 말을 남기고 갔다. 나는 나무의 갈라진 가지를 종이에 그렸다. 길을 확인한다는 것이 특별한 도술을 쓰는 일만은 아니었다.

바리데기가 선착장 끝의 발판을 짚었다.

“여기는 높이가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자꾸 발을 헛디뎌요.”

돌아가는 길에 그 말을 전했다. 작업자가 다음 날 발판 밑에 받침을 넣었다. 그런 작은 일이 처리될 때는 잠깐 마음이 놓였다. 나루를 돕는 일과 나루에서 벌어지는 일을 의심하는 일이 꼭 서로 반대일 필요는 없었다.

자청비는 주방 일을 거들다가 내게 밥그릇을 내밀었다.

“생각은 먹고 해요. 안 먹고 하니 얼굴만 더 험해져요.”

“원래 이렇습니다.”

“그럼 더 험해지면 곤란하겠네요.”

나는 웃으며 그릇을 받았다. 머릿속에 계속 같은 질문이 맴돌다가도 그런 말을 들으면 잠깐 쉬었다.

연은 빗을 다시 아버지에게 맡기지 않았다. 대신 다리 통증을 살펴 주던 의원을 정해진 날 찾아갔다. 나루지기는 그날 그녀의 몫까지 짐을 셌다.

둘은 말을 끊지는 않았다. 밥은 먹었느냐, 물건은 어디에 두었느냐고 서로 물었다. 그 평범한 말 사이에 전과 다른 침묵이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을 대신 메우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 저녁 나루지기와 함께 빈 그릇을 나르다가 물었다.

“예전에는 길이 더 잘 맞았습니까?”

“맞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꼭 상류 수문이어야 합니까?”

그는 잠깐 걸음을 늦췄다.

“그곳에서 여러 길을 오래 붙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요?”

“방식을 보내 준 이들이 있습니다. 기록도 보여 드리지요.”

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나를 봤다.

“길동 씨는 돌아가는 배를 구하셨지요. 저는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도 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주방 앞에 사람이 몰려왔다. 나는 뜨거운 솥을 옮기면서도 그의 말을 떨치지 못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날 밤 수문 기록을 베낀 종이를 받았다. 모르는 말과 낯선 홈 모양이 있었다. 이것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장영실에게 보낸 그림이 무사히 도착했기를 바랐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등불을 고치는 사람에게서 익숙한 불평을 들었다.

“불을 켜 달랬더니 불 낼 뻔한 걸 가져오셨네요.”

손에 들고 있던 물통을 내려놓았다.

그 말투는 항구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15화 끝

초기 원고 기준일 최종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