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하자마자 국자를 빼앗겼다.
“그건 배급용이에요. 손 씻고 오세요. 밥부터 드려야겠네.”
여자가 국자를 솥가에 걸었다. 나는 커다란 솥 앞에서 민망하게 손을 내렸다.
“퍼 드리려던 겁니다.”
“그럼 더더욱 손부터요.”
자청비가 내 뒤에서 웃었다.
구호 나루까지는 사흘이 걸렸다. 걷고 배를 갈아타고, 막힌 길은 돌아왔다. 도착하자 밥 냄새부터 맡았다. 그동안 윤석도 집에 가까워졌을 터였다.
우리는 윤석에게 받은 표지를 내밀며 여기까지 길을 물어 왔다.
내 손에서 국자를 거둔 여자는 솥의 뚜껑을 반쯤 덮었다. 한쪽 다리에 무게를 오래 싣지 않으려는지, 이동할 때 짧은 지팡이를 짚었다.
“배를 기다리세요, 잠자리를 찾으세요?”
정도전이 표지를 보였다.
“물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러 왔소. 우선 나루 일을 맡은 분을 만나고 싶소만.”
“아버지는 위쪽 배를 받고 계세요. 곧 오실 거예요.”
그녀는 빈 그릇 다섯 개를 세어 놓았다.
“저는 연이에요. 기다리는 동안 드세요. 나루지기를 찾았다고 전할게요.”
나루를 지키고 오가는 배를 맡는 사람. 여기서는 나루지기라는 호칭만으로 누군지 통하는 모양이었다.
밥 먹을 자리는 많지 않았다.
긴 판자에 먼저 온 사람들이 다닥다닥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젓가락을 깎고, 어떤 사람은 해진 짐보를 꿰맸다. 큰 등불 하나 아래에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작은 등불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이쪽에 두 사람 앉을 수 있어요.”
연이 손짓했다. 자청비와 바리데기가 먼저 앉았다. 이순신은 물가 쪽을 둘러보겠다며 그릇을 들고 나갔다. 정도전은 배를 기다리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서서 먹으려다 판자 끝의 부러진 다리를 봤다. 그 위에 앉은 노인이 몸을 옮길 때마다 한쪽이 내려갔다.
“잠깐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판자를 들어 보니 받침이 금 가 있었다. 내가 한쪽을 잡는 동안 옆의 사내가 돌을 끼우려 했다.
“돌로는 또 밀립니다. 짧은 나무토막 있습니까?”
그가 땔감 더미에서 굵은 토막을 가져왔다. 나는 칼을 꺼내려다 갈라진 칼집을 봤다. 물가에서 망령의 손을 벌리느라 끝이 상해 있었다.
연이 작업용 작은 도끼를 가져다 놓았다.
“이걸 쓰세요. 칼날 상하면 제가 물어드릴 수는 없어요.”
“밥값에서 빼주시는 것도 안 됩니까?”
“아직 밥값도 안 받았는데요.”
나는 웃으며 도끼를 들었다. 받침을 맞추고 옆으로 빠지지 않게 나무못을 박았다. 사람들이 다시 앉자 판자가 기울지 않았다.
노인이 엉덩이를 몇 번 움직여 보더니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두드렸다.
“이제 먹게.”
내 몫의 그릇이 거기 있었다. 자청비가 먼저 담아 놓은 국은 조금 식어 있었다. 대신 그 위에 건더기가 넉넉했다.
“이 정도면 밥값은 했습니까?”
나는 자청비에게 물었다.
“밥 주인한테 물어야지 왜 저한테 물어요?”
“건더기는 자청비 씨가 더 주셨잖습니까.”
그녀가 제 그릇을 들어 보였다.
“그건 옆에서 더 주셨어요. 의자 고쳐 줬다고.”
바리데기가 우리 사이에서 웃었다. 나는 밥을 크게 떠먹었다.
그동안 먹은 밥보다 특별히 맛있는 것은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는 땅에 앉아서, 다음 발을 어디에 디딜지 생각하지 않고 먹는다는 것이 좋았다.
오후에는 짐을 나르는 일을 거들었다.
큰일을 맡은 것은 아니었다. 낮은 창고에 들어온 곡식 자루를 젖지 않는 선반으로 옮겼다. 연은 지팡이를 벽에 기대 놓고 앉아서 받을 자리와 먼저 쓸 것을 골랐다.
한 사내가 가볍게 보이는 자루를 위로 올리려 하자 그녀가 불렀다.
“그건 뜯은 거예요. 오늘 저녁에 쓸 쪽으로.”
“또 바뀌었어?”
“아침부터 거기였어요.”
사내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자루를 바꿨다. 나는 잠깐 분신을 쓰면 더 빨리 끝날까 생각했다가 그만뒀다. 여기서는 옆사람이 받아 주면 됐다. 손바닥도 아직 아물지 않았다.
일을 마치자 연이 내 붕대를 봤다.
“상처가 있는데 말하지 그랬어요.”
“쌀이 대신 알아주지는 않더군요.”
“알아줄 사람한테 말하면 되잖아요.”
그녀가 작은 의자를 밀어 줬다. 나는 순순히 앉았다.
연은 잠깐 다리를 뻗었다가 옷자락을 정리했다. 사람들이 모두 창고에서 나간 뒤에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많이 아픕니까?”
“오래 서 있으면요. 오늘은 생각보다 배가 많이 왔어요.”
나는 괜히 더 캐묻지 않고 문 옆에 있던 물병을 가져다 놓았다. 그녀가 고맙다는 말을 하며 뚜껑을 열었다.
머리카락이 얼굴 옆으로 흘러내렸다. 연은 품에서 나무빗을 꺼내 대강 빗었다. 빗의 손잡이 한쪽에는 오래 쥐어 반들반들해진 자국이 있었다.
바깥에서 굵은 목소리가 났다.
“연아, 아침에 빗 갈라진 데가 보이더라. 잠깐 주겠니. 붙여 놓으마.”
문 앞에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소매는 걷어 올렸고 팔에는 줄에 쓸린 자국이 있었다.
연이 빗을 건넸다.
“너무 두껍게 붙이지 마세요. 손에 걸려요.”
사내가 손잡이를 쓸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를 향해 짧게 인사했다.
“표지를 가져온 분이라지요. 저녁에 이야기합시다. 아직 물가에 사람을 남겨 두어서.”
그는 길게 자기소개를 하지 않고 돌아섰다. 연이 빈 그릇을 모으며 말했다.
“아버지예요. 만나고 싶다고 하셨지요.”
나는 물가로 내려가는 그의 등을 봤다. 등불 기름을 나르던 아이 하나가 길을 막자, 사내는 아이를 탓하는 대신 무거운 통을 받아 옆으로 옮겼다.
물새호의 표지를 보며 상상했던 얼굴과는 조금 달랐다. 물론 나는 어떤 얼굴일지 제대로 그려 본 적도 없었다.
정도전은 저녁 전에 항구로 소식을 전하러 가는 사람을 만났다.
우리가 가져온 그림과 물 높이를 잰 기록을 장영실에게 보내기로 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발견한 표지의 모양도 덧붙였다. 정상 길로 닷새쯤 걸린다고 했다.
“답을 받으려면 더 기다려야겠군요.”
내가 말하자 정도전은 종이를 단단히 쌌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볼 것을 봐야지. 답이 오기도 전에 다 알았다고 정하지 말고.”
그는 여기서 밥과 잠자리를 마련하는 방식에도 관심이 있었다. 다만 처음부터 장부를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저녁을 받은 사람들이 어디서 자는지 연에게 물으며 같이 걸었다.
바리데기는 길을 잃어 도착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노인은 자꾸 다른 나루 이름을 말했다. 바리데기는 그 이름을 고치려 하지 않고 누굴 만나려 했는지부터 물었다.
자청비는 주방 뒤에서 작은 텃밭을 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무릎을 펴며 손에 묻은 흙을 털었다.
“자랄 만합니까?”
“해는 좋은데 물이 너무 가까워요. 저 낮은 둑으로 비 올 때도 버틸까요?”
나는 흙에 남은 젖은 선을 봤다.
“더 높은 곳에 심으면 어떻습니까?”
“그럼 물을 길어 와야죠.”
“그건 제가 할 줄 압니다.”
자청비가 웃으며 바구니를 들었다.
“여기 오래 있을 생각인가 봐요.”
나는 대답 대신 빈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해가 지자 등불에 차례로 불이 붙었다.
도착할 때는 몰랐던 길이 밝아졌다. 물가에서 주방까지, 주방에서 잠자리까지. 불을 든 사람 하나가 빈 창고 앞에 멈춰 섰다. 그 뒤를 따라온 늙은 부부가 그 안에 짐을 내려놓았다.
이곳에는 이미 서로 아는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들어온 사람이 하루씩 일을 맡고, 다음에 오는 사람을 받았다.
잠자리 앞에서는 작은 다툼도 났다. 먼저 도착한 사내가 문에서 먼 자리를 달라고 했다. 밤바람이 들어오면 기침이 심해진다는 말이었다. 뒤에 온 사람은 자기도 다리가 아파 자주 나가야 한다고 했다.
연은 두 사람에게 자리를 바꿔 앉아 보라고 했다. 먼저 온 사내가 안쪽에, 뒤에 온 사람이 문 가까이에 앉았다. 서로 원하는 곳이 달랐다는 걸 알고 나서야 언성이 낮아졌다.
나는 짐을 옮겼다. 벽에 기댄 사내가 숨을 고르는 동안, 문 가까이 앉은 사람은 길을 막지 않게 다리를 뻗었다. 연은 누가 먼저 왔는지 다시 묻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서며 내게 빈 등불을 건넸다. 나는 불을 옮겨 붙이고 문 안에 걸었다. 방금 다투던 두 사람이 그 아래서 신을 벗고 있었다.
낮에 판자를 받쳤던 사내가 내 옆에 섰다.
“내일도 있나?”
“아마 있을 겁니다.”
“창고 문이 자꾸 처져. 손 좀 봐주게. 밥은 연이가 챙겨 줄 거고.”
나는 그가 내 이름을 물을 줄 알았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자식인지, 무슨 자격으로 머무는지도.
그는 낮에 판자 받침을 고친 솜씨를 기억하고 있었다.
“수리가 끝나도 밥은 줍니까?”
“잘 끝내면 더 주지.”
그가 웃으며 떠났다.
나는 사내를 다시 불렀다.
“계속 머물면 방값은 얼마입니까?”
“계속?”
묻고 나니 자청비가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괜히 문짝을 한번 밀었다.
“며칠 더 있어야 할 수도 있으니 여쭙는 겁니다.”
사내는 고치는 동안은 빈자리를 쓰라며 안쪽을 가리켰다. 창 옆에 짐 하나 놓을 틈이 있었다. 보퉁이를 내려놓아도 남의 발에 채이지 않을 자리였다.
자청비가 내가 보는 곳을 따라봤다.
“조사하러 와서 방부터 구하네요.”
“의자도 고쳤으니 앉을 자리는 있어야지요.”
나는 웃어넘겼다. 저녁에 돌아와도 누가 내 자리를 치우지 않는 방. 일만 끝나면, 잠깐쯤 그런 곳에 짐을 풀고 싶었다.
물가에서 종이 울렸다.
한 번, 곧이어 두 번.
밥을 나르던 사람들이 멈췄다. 이순신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를 따라 물가로 달렸다.
아래쪽 수로에서 작은 배가 옆으로 밀리고 있었다. 배에는 아직 사람이 있었다. 나루지기가 난간을 넘어 낮은 발판으로 내려갔다.
“줄을 이쪽으로!”
그가 한 팔로 물에 잠기는 문틀을 붙잡았다.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사람 하나가 배 난간을 넘어 손을 뻗었다.
나루지기는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