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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of Yuldo · Episode 1 · Korean original

같은 등불을 세 번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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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였다.

안개 너머로 노란 등불이 보였다. 그 아래에는 가운데가 갈라진 바위가 있었고, 바위 곁 기둥의 붉은 천은 끝이 세 갈래로 찢어져 있었다.

나는 난간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귀신에 홀리면 같은 곳을 맴돈다더니. 남의 눈을 속이는 데는 자신이 있었는데, 막상 내가 당하니 조금 억울했다.

“선장님.”

“왜, 멀미라도 하나?”

“저 등불을 또 지났습니다.”

“항구로 들어가는 길이지.”

“벌써 세 번 들어가고 있는데요.”

선장이 다가왔다. 찢어진 천을 한참 보더니 허리에서 짧은 칼을 뽑았다.

“저 불을 지날 때마다 난간에 금을 하나씩 긋게.”

“세 개부터요?”

“하나부터.”

세 번 봤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선장은 칼자루를 내 쪽으로 돌린 채 기다렸다.

나는 칼을 받았다. 한 번 더 돌아오면 그때는 믿겠지.

난간에 금 하나를 긋고 칼을 돌려주었다. 등불은 뒤로 멀어졌다. 발치에 둔 보따리를 조금 높은 곳으로 옮겼다. 마른 옷 한 벌과 여비가 전부였다.

율도에 닿으면 무엇부터 할까.

배를 타기 전에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율도에서는 누구의 아들인지, 어머니가 누구인지 따지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더 간절했다.

“도착하면 뭘 할 생각인가?”

선장이 물었다.

“밥부터 먹으려고요.”

“그건 아까도 먹었잖나.”

“누구 눈치 안 보고 한 그릇 더 달라고 해 보려고요.”

선장이 나를 힐끗 보았다. 사정을 묻는 대신 돛줄을 잡아당겼다.

“부두 끝 국밥집으로 가게. 양은 넉넉해.”

“맛은요?”

“배고플 때 가.”

맛있다는 말은 끝내 안 했다.

그때 종이 울렸다.

한 번. 조금 뒤 두 번.

앞쪽 안개가 붉게 물들었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나무가 찢어지는 소리가 물 위를 타고 왔다.

“돛 내려!”

선장의 고함에 선원들이 뛰었다.

안개 밖으로 배 한 척이 밀려 나왔다. 우리 배보다 큰 화물선이었다. 한쪽 난간은 이미 물에 잠겼고, 꺾인 돛대가 갑판을 가로질렀다. 넘어진 화로 옆에서 돛천이 타고 있었다.

물에 잠기지 않은 쪽 갑판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 하나가 손을 흔들다 미끄러졌다. 검은 옷의 사내가 그의 옷깃을 낚아채 끌어 올렸다.

“짐은 놓아라. 빈손으로.”

선원이 끌어안고 있던 작은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꾸러미가 미끄러지다 쌓인 널판에 걸렸다.

나는 주위의 밧줄을 집었다. 허리에 둘러 보고 남은 길이를 살폈다.

“선장님, 제가 건너가겠습니다.”

“배를 붙여야…….”

두 배 사이가 좁아졌다. 저쪽 난간까지 서너 걸음. 발 디딜 곳은 충분했다.

한 사람이라도 빨리 옮겨야 했다.

난간 위에 발을 올리는 순간 검은 옷의 사내가 외쳤다.

“거기, 멈춰라!”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명령부터 했다.

“건널 수 있습니다!”

“지금 배를 붙이면 둘 다 물살에 휩쓸린다.”

“제가 건너는 데 오래 안 걸립니다.”

“발밑을 봐라.”

배 사이를 내려다봤다. 흰 거품만 보였다.

다음 순간 그 거품을 뚫고 나무 한 토막이 솟았다. 사람 몸통보다 굵은 돛대였다. 옆으로 떠밀려 오던 것이 갑자기 방향을 꺾었다.

쿵.

두 배 아래로 빨려 들어간 나무가 선체를 때렸다. 발바닥까지 울렸다.

나는 난간을 붙잡았다.

뛰었으면 저 나무보다 먼저 끼었겠다.

“거꾸로 저어!”

선장이 외쳤다. 나는 막내가 놓친 노를 발로 막고, 그와 함께 노를 밀었다. 거센 물살에 노가 밀려 오자 어깨가 빠질 듯 아팠다.

담을 넘을 때처럼 뛰었다가는 큰일 날 뻔했다. 발을 디딜 배부터 쉬지 않고 움직였다.

배가 간신히 멀어졌다.

저쪽 사내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물에 떠 있는 잔해를 살피다가, 손이 다친 선원을 널판 가운데 앉혔다.

걷어 올린 소매 아래로 피가 흘렀다.

“그쪽 배에 몇 명이나 있소?”

우리 선장이 물었다.

“나까지 여덟. 하나는 아래에 있소.”

“아래 사람은 움직일 수 있습니까?”

내가 끼어들었다.

대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사내가 창고 쪽을 돌아봤다.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제가 들어갑니다.”

“구해서 어떻게 돌아올지부터 정해라.”

또 기다리란다. 배 안쪽에서 희미한 기침이 들렸다.

나는 줄을 짧게 고쳐 잡았다. 이번에는 건너갈 곳 말고, 돌아올 배를 봤다.

“그쪽은 맡아 주십시오. 저는 안에 있는 사람을 맡겠습니다.”

사내가 우리 선장을 보았다.

선장은 선원 셋을 불러 줄을 맡겼다. 길게 뻗은 줄 끝을 저쪽으로 던졌다. 검은 옷의 사내가 받아 높은 기둥에 감았다.

“오래 못 버티오!”

“사람이 건너는 동안만 부탁하오.”

물살이 잦아들었다.

그가 손을 들었다가 앞으로 내저었다. 나는 그제야 난간을 박찼다.

발밑으로 검은 물이 빠르게 흘렀다. 밧줄을 잡아 몸을 틀고 저쪽 난간을 넘었다.

갑판에 닿는 순간 발이 미끄러졌다.

사내가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기둥을 짚고 멈췄다. 내 소매를 고쳐 잡는 그의 손이 조금 떨렸다.

“빠르군.”

“기다리는 건 잘 못합니다.”

“보았다.”

그 짧은 대답이 꼭 핀잔처럼 들렸다.

나는 두 손가락을 펴고 빈 갑판을 짚었다.

또 하나의 내가 그곳에 섰다. 분신이 기울어진 널판을 붙잡자 나무가 삐걱거렸다.

“사람 받는 쪽을 맡아.”

분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끄러지는 선원의 허리를 붙들고 발 디딜 곳을 짚어 줬다.

우리 배의 막내가 외쳤다.

“한 명 더 있었습니까?”

“제가 만든 분신입니다. 사람 수에는 넣지 마세요!”

검은 옷의 사내가 두 얼굴을 번갈아 봤다.

“저쪽도 밧줄을 잡을 수 있나?”

분신이 줄을 받아 힘껏 당겼다. 느슨하던 줄이 팽팽해졌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좋다. 그쪽은 사람을 받쳐라. 건널 때는 내가 알리겠다.”

놀랄 틈도 없이 일을 맡기는 사람이었다.

선원들이 묶은 널판을 물에 내렸다. 양쪽 배에서 따로 잡은 줄로 흔들림을 줄이고, 우리 배 쪽에서 사람을 끌어당겼다. 나는 내려가는 선원을 받쳐 주었다.

첫 사람이 건너갔다.

바닥에 엎어져 물을 토하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다음!”

그제야 이쪽 사람들도 움직였다.

널판에 올라서기를 망설이는 늙은 선원에게 팔을 내밀었다.

“발밑 말고 저쪽 배를 보십시오.”

“발밑이 보이는데 어쩌라고!”

“저한테 욕하면서 가시면 됩니다. 숨 참지 마시고.”

그는 정말 욕을 했다.

생각보다 잘 걸었다.

맞은편에 닿자 욕이 기침으로 바뀌었다. 그 소리를 듣고 다음 사람이 웃었다. 떨고 있던 무릎은 여전했지만 널판에는 올라갔다.

여섯 번째 선원까지 보내고 나자 갑판에는 사내와 나, 분신만 남았다.

나는 창고 문을 두드렸다.

“안에 있습니까?”

기침 뒤로 가느다란 대답이 왔다.

“여기요.”

창고 안에는 벌써 물이 차 있었다. 입구는 낮았고, 안쪽에는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검은 옷의 사내가 무릎을 굽혔다가 상처 난 팔을 움켜쥐었다.

“제가 갑니다. 그 팔로는 안에 들어가도 짐을 못 들겠습니다.”

그가 나를 보았다.

말이 거칠었나 싶었지만 주워 담지는 않았다. 사람이 남아 있었다.

사내는 기둥에 감았던 줄을 풀어 창고 입구로 끌어 놓았다. 반대쪽 끝은 여전히 우리 배 선원들이 잡고 있었다. 널판을 오가게 하던 다른 줄은 높은 기둥에 남겨 뒀다.

“이 줄로 사람을 내보내라. 나는 여기서 받겠다.”

내가 물이 찬 창고에 발을 넣으려는데 그가 물었다.

“이름이 뭔가?”

“지금요?”

“안에서 대답이 없으면 불러야지.”

그 말에는 토를 달 수 없었다.

“홍길동입니다.”

“길동. 발부터 살피고 들어가라.”

누구의 아들이냐고 물으면 짧게 답할 생각이었다.

사내는 벌써 창고 문을 받치고 있었다. 준비한 대답을 삼키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여기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나올 때 알려라.”

분신을 창고 입구로 불렀다. 분신은 입구를 막은 나무 조각을 옆으로 밀어 치우고 밧줄을 잡았다.

“내가 사람을 올리면 받아 줘. 이분 말씀대로 움직이고.”

“안에도 한 명 더 보내면 낫지 않겠나?”

사내가 물었다.

입구 안쪽을 들여다봤다. 넘어진 짐 사이로는 한 사람 겨우 지나갈 틈만 남아 있었다.

“둘이 들어가면 끼겠습니다. 밖에서 받아 주는 편이 낫습니다.”

분신이 소매를 걷었다. 분신이 일한 만큼 내 어깨에도 피로가 쌓였다.

나는 문턱을 넘었다.

두 걸음 만에 물이 종아리까지 왔다. 곡식 자루 사이에 젊은 선원이 앉아 있었다. 한쪽 발목이 넘어진 나무틀에 눌려 있었다.

“얼굴 좀 보겠습니다.”

젊은 선원이 고개를 들었다. 나와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입술을 어찌나 깨물었는지 피가 배어 있었다.

“많이 다쳤습니까?”

“신발이…… 안 빠집니다.”

신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발목이 부어 있었다. 나무틀 반대편에는 큰 자루가 두 개나 얹혔다.

칼을 꺼내 걸린 옷자락부터 잘랐다. 틀을 밀어 봤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밖에서 갑판이 삐걱거렸다.

선원이 내 팔을 붙잡았다.

“저 때문에 다른 분들도 못 가는 겁니까?”

“다른 분들은 벌써 건너갔습니다.”

“그럼 두 분만…….”

“셋이지요. 당신까지.”

그가 물이 들어오는 쪽을 보려 하기에 내 어깨를 잡게 했다.

“발을 빼면 나갑니다. 지금은 그것만 합시다.”

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한 손에 든 것은 놓지 않았다.

헝겊 주머니였다.

“그건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밥입니다.”

“나가면 새로 드시면…….”

“누이가 아침에 먹으라고 싸 줬는데.”

천 한쪽이 그을려 있었다. 삐뚤게 꿰맨 주머니의 입구는 몇 번이나 단단히 묶여 있었다.

나는 하려던 말을 그만뒀다. 주머니를 받으려 손을 뻗자 선원은 그것을 가슴에 바짝 붙였다.

빼앗는 대신 입구의 매듭을 더 조여 주었다.

“알겠습니다. 이것도 챙겨 갑시다.”

주머니를 받아 그의 품에 넣었다.

“빠뜨리면 누이께는 제 탓이라고 하시고요.”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들고 온 줄을 그의 몸에 둘렀다. 물에 떠도 빠지지 않도록 어깨 아래를 받쳐 매고 매듭을 당겨 봤다. 젖은 천 너머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칼을 거두고 칼집을 나무틀 아래 밀어 넣었다. 썩은 바닥이 먼저 부스러졌다.

안 됐다.

이를 악물고 옆의 굵은 받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쪽 어깨까지 틀 아래 넣었다.

“제가 들면 발을 빼십시오. 아파도 멈추면 안 됩니다.”

선원이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창고 입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길동!”

이번에는 그 이름이 반가웠다.

“곧 갑니다!”

어깨로 나무틀을 밀어 올렸다. 팔에 힘을 더 주자 칼집 끝이 쩍 갈라졌다.

아끼던 칼집이었지만 지금 힘을 뺄 수는 없었다.

“지금!”

틀이 들렸다.

선원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발이 빠졌다.

나는 그를 끌어안고 옆 기둥을 잡았다. 동시에 배가 크게 기울었다. 허리까지 물이 밀려들었다.

발은 뺐다. 나가면 됐다.

선원의 팔을 어깨에 걸치고 몸을 돌렸다.

열린 문 너머로 검은 바다가 보였다.

돌아갈 갑판이 사라져 있었다.

End of episode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