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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of Yuldo · Episode 30 · Korean original

등불이 남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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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남았고, 문이 달렸던 벽은 무너져 있었다.

나는 진흙에 반쯤 묻힌 문짝 앞에 앉았다. 밑을 조금 깎아 낸 자국이 보였다. 내가 고쳤던 문이었다.

본 수문을 끊은 다음 날, 우리는 다친 사람들을 쉬게 하고 하류로 출발했다. 급한 물살이 가라앉는 곳을 골라 이동해 그다음 날 구호 나루에 닿았다.

집들은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높은 곳의 벽은 버텼고, 낮은 창고는 옆으로 기울었다. 솥이 있던 주방 바닥에는 진흙이 찼다. 우리가 빈 등불을 매달아 두었던 기둥 하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문짝을 들어 세우려다 손을 멈췄다. 혼자 들면 또 떨어뜨릴 것 같았다.

옆에서 익숙한 손이 끝을 잡았다.

“둘이 들면 되지.”

문을 고칠 때 나무를 잡아 줬던 사내였다.

우리는 문짝을 옮겼다. 지금 당장 달 벽은 없었지만 써볼 수 있는 곳에 세워 뒀다.


노인은 가져가지 못한 그릇을 찾고 있었다.

궤짝은 벌어져 있었다. 몇 개는 깨졌고 몇 개는 진흙 속에서 나왔다. 그는 쓸 수 있는 것만 골라 물로 씻었다.

나는 옆에 앉아 진흙을 털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하자 노인이 나를 봤다.

“물 내려온 걸 자네 혼자 다 미안해할 건 없소.”

그는 깨진 사발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속은 상하오.”

“예.”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다음 그릇을 건넸다.

노인이 건넨 사발 바닥에서 작은 무늬가 드러났다. 나는 흙을 마저 씻었다. 노인이 햇빛에 비춰 보고는 깨지지 않은 그릇 옆에 놓았다.

언덕 위 거처에는 사람들이 살아 있었다. 대피 전에 옮긴 곡식으로 밥을 지었고, 마른 잠자리를 조금 더 넓혔다. 새 생활은 이미 시작됐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도전은 현지 사람들과 조사할 자리를 만들었다.

나루지기와 호위들의 말, 작업자들의 말, 갇혔던 주민들의 말을 따로 들었다. 누가 시켰는지와 누가 무엇을 했는지 나눠 기록했다. 사람을 구한 과거가 사람을 가둔 일을 없애 주지는 않았다.

반대로 그가 살려 온 사람들의 기억을 거짓이라고 만들 필요도 없었다.

나는 조종실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손잡이를 다시 잠그려 했던 것, 연의 아픔을 되돌리고 싶다고 한 것, 끝내 살아서 배에 오른 것. 내가 보지 못한 마음까지 단정해서 덧붙이지는 않았다.

나루지기는 다른 방에 있었다.

연은 그 방 앞에 서 있다가 돌아섰다. 나는 따라가 묻지 않았다. 잠깐 뒤 그녀는 물을 한 그릇 가져다 담당자에게 건넸다.

“드리세요.”

그것이 오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연은 아버지 대신 나루지기라고 불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부르자 그녀는 제 이름을 말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일은 여러 사람이 나눠 맡자고 했다.

“저는 식량과 머물 자리를 볼게요. 배는 배를 아는 분이, 길은 직접 다녀본 분들이 맡아 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모르는 것까지 제게 물어보면 답이 늦어져요.”

그 말에 사공 하나가 웃었다.

“배 고칠 돈 달라는 말은 해도 되지요?”

“얼마나 필요한지 같이 봐요. 저도 물어볼 분이 많아요.”

연이 그를 빈 의자로 불렀다.

연은 자기 의자도 앉기 편한 곳으로 옮겼다. 일을 할 때마다 아픈 다리를 숨기느라 구석에 갈 필요가 없도록 했다.

자청비는 항구에 맡긴 씨앗을 찾아 상태부터 살피겠다고 했다. 여기서 심을 자리가 정해지면 무엇이 맞는지 같이 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연은 주방 뒤의 밭에도 진흙이 쌓였다며, 먼저 흙을 걷어 내야겠다고 했다.

루크는 남은 표지를 분리하고, 새로 놓은 발판을 일꾼과 함께 흔들어 봤다.

“이렇게 흔들면 안 무너집니까?”

내가 물었다.

“지금 무너지면 다행이죠. 사람이 건널 때 무너지면 곤란하니까.”

그는 손을 털고 내 쪽을 봤다.

“문은 건졌어요?”

“벽이 없어졌습니다.”

“그럼 다음엔 문보다 벽부터네요.”

나는 옮겨 놓은 문짝을 봤다. 노인이 흙을 털고 있었다.

“다음에 와도 될까요?”

내가 묻자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문 고치러?”

“밥 먹으러요.”

노인이 웃었다.

“그럼 솥부터 제대로 걸어 놔야겠구려.”

나는 문짝에 남은 진흙을 털었다. 방 하나를 얻으려던 곳에, 돌아와 밥을 먹자는 약속이 남았다. 루크는 옆에서 벽 세울 자리를 재고 있었다.

이틀 동안 급한 일을 거든 뒤 우리는 항구로 떠났다. 연은 언덕 위의 사람들과 함께 남았다. 손을 흔드는 그녀의 품 안에 오래된 빗이 들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닷새가 걸렸다.

짧아졌다는 낯선 길을 택하지 않았다. 이미 확인한 길을 따라 배를 갈아타고 쉬어 갔다. 길에서 들은 마을 이름들은 여전히 서로 다른 시대를 가리켰다. 그러나 이제 이름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놀라 멈추지는 않았다.

그곳에도 밥 먹을 때와 짐을 옮길 때가 있었다. 길을 잃으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항구에 닿은 날, 자청비는 상인의 창고부터 찾아갔다.

우리가 이 항구에 처음 내린 날부터 서른셋째 날이었다. 보관을 맡긴 기한은 아직 남아 있었다. 큰 짐들이 마른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상인이 자루의 매듭을 풀어 보여 줬다. 자청비는 손에 씨앗을 조금 덜어 상태를 봤다. 기분이 좋은지 어깨가 천천히 내려갔다.

“잘 봐주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상인은 품삯을 받았으니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자청비는 그래도 고맙다고 다시 말했다.

나는 큰 자루 하나를 들어 밖으로 옮겼다. 자청비가 뒤에서 밑을 받쳤다.

“이번에는 얼마나 심을 겁니까?”

“길동 씨가 날라 주실 만큼요.”

나는 창고에 남은 자루들을 봤다. 하나같이 컸다. 자청비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먼저 나갔다.

장영실도 항구에 있었다.

우리는 겪은 일을 그림과 함께 전했다. 그는 수문이 끊어진 때, 물이 빠진 쪽, 두 장소가 겹치던 자리가 사라진 모습을 차례로 물었다. 내가 확인한 것만 답하자 그는 모르는 곳을 빈칸으로 남겼다.

“그럼 율도 안을 오가던 배에 어떻게 오르셨는지는 아직 모르는군요.”

“예. 그건 아직입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내 승선 기록을 덮었다. 수문을 그린 종이는 따로 펼쳐 뒀다. 끊어진 줄에 짧은 표시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날 윤석의 집에 갔다.

문 앞에서 아이가 자그마한 짐을 들고 나왔다. 발에는 처음 왔을 때 아이가 닦고 있던 낡은 신이 있었다. 뒤따라 나온 윤석이 짐을 받아 주려 하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자기 것도 들 수 있다며 아버지 옆에 섰다.

윤석은 우리를 보자 짐을 내려놓았다.

“정말 돌아오셨네요.”

그의 얼굴에 물기가 없었다. 햇볕에 조금 그을렸고, 볼은 전보다 덜 말라 있었다.

딸은 내 얼굴을 보다가 자청비의 바구니를 봤다.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묻자 자청비가 씨앗 하나를 꺼내 손바닥에 놓아 줬다. 아이는 먹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윤석 옆에 짐을 내려놓았다.

윤석의 아내가 물을 내왔다.

집 안쪽에는 푸른 실로 꿰맨 자루가 걸려 있었다. 쓰고 말리는 자루였다. 증거처럼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 됐다.

“새 배 일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윤석이 말했다.

“이번엔 출발한 곳하고 돌아올 날을 제대로 남기려고요.”

그는 아내를 보고 조금 웃었다.

“장부보다 제가 먼저 알아야죠.”

아내가 말하자 윤석이 곧바로 알았다고 했다. 아이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신발 끝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나는 물새호에서 미뤄 두었던 인사를 다시 받았다.

이번에는 돌아가서 듣겠다고 미루지 않았다.

“무사히 뵈어서 좋습니다.”

내가 답했다.

집을 나올 때 아이가 윤석의 손을 잡았다. 그는 걷는 속도를 아이에게 맞췄다. 특별한 영웅의 행적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저 모습을 보려고 갈대밭까지 갔다.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 우리 앞으로 온 기록을 받았다.

구호 나루에서 부탁한 부품 비교에 대한 답이었다. 양규 쪽에서 예전에 수로를 살피다 건진 쇠 부품에도 비대칭인 세 홈이 있었다. 발견한 날짜는 우리가 서쪽 길에 갇히기 전이었다. 그림을 맞춰 본 답장은 평소 연락을 전하던 사람이 가져왔다. 우리가 돌아오기 전에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누가 만든 건지는 아직 모르겠군요.”

내가 말했다. 정도전은 발견한 날짜에 짧은 선을 그었다. 오늘 새로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다음에 확인합시다.”

나는 종이를 접어 짐에 넣었다. 식당 안에서 자청비가 내 이름을 불렀다.

식당 주인이 우리를 알아봤다.

“이번에도 다섯 사람 몫이오?”

나는 문 안을 봤다.

율도국을 찾아 바다로 나설 때는 누구의 아들인지 묻지 않는 곳이면 짐을 풀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제는 머물 자리를 내준다고 아무 곳에나 짐을 풀 수는 없었다. 내가 떠나겠다고 할 때도 그 말을 들어 줄 사람들과 있고 싶었다.

이순신은 사공에게 돌려줄 물건을 내려놓고 있었다. 정도전은 종이를 밥상에서 멀리 옮겼다. 바리데기는 자청비 옆에 앉아 자기 짐을 의자 밑으로 밀었다.

자청비가 나를 보고 빈자리를 두드렸다.

“먼저 앉아요. 또 남의 밥 세기 전에.”

나는 웃으며 앉았다.

“밥값은 오늘 제가 내겠습니다.”

주인이 내 얼굴을 보고 웃었다.

“일단 먹고 계산해도 되오. 다섯 그릇 값은 안 달아나.”

나는 주머니를 다시 넣었다. 자청비가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서둘러 갚겠다는 말보다 같이 앉아 먹는 것이 먼저인 날도 있었다.

바리데기는 문 쪽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나자 고개를 들었다. 다른 손님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녀는 밥상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릇을 당겼다.

“오늘 밤은 좀 자야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차례의 밤샘은 끝났지.”

나는 그 말에 기대어 어깨를 내렸다. 우리 없는 동안에도 항구를 지키는 사람은 있었다. 내일 다시 할 일이 생기더라도, 지금 이 밥상에서 먼저 일어날 이유는 없었다.

잃은 집도, 남은 상처도, 아직 갚지 못한 일도 있었다. 어느 하나 없던 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우리가 지킨 역사 안에는 그 밤을 함께 버틴 일도 남을 것이다.

주인이 그릇을 놓았다. 다섯 개였다.

나는 앞에 놓인 밥을 받았다. 이순신이 자기 그릇을 내 쪽으로 조금 밀어 놓았다.

“이번에도 모자라나?”

“오늘은 제 것부터 먹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그릇을 당겼다. 누군가 한 숟갈을 더 주기 전에 앉아 있을 자리가 먼저 마련돼 있었다.

오늘은 누구를 기다려야 하는지 헤아리지 않아도 됐다.

모두 와 있었다.

End of episode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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