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은 꺼져 있었고, 고치는 사람은 혼자 떠들고 있었다.
“기름은 이렇게 많이 넣으면서 못은 왜 하나를 아끼셨어요. 절약도 자리를 봐야죠.”
나는 문에 기대 섰다.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가 작은 못을 입에서 빼 접시에 놓고 고개를 들었다. 항구에서 만났던 등불지기였다. 내게 천을 빌려 주고, 돌아가는 배표는 파는 곳이 없다고 했던 사람.
그는 내 손의 붕대를 봤다.
“천은 돌려주고 상처는 새로 빌렸네요.”
“상처는 제 것입니다.”
“주인은 확실하네요.”
나는 웃다가 그가 곁에 놓은 짐을 봤다. 먼 길의 흙이 묻어 있었고, 신발 한쪽 끈이 새것이었다.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요. 와서 앉으려는데 이 등불이 먼저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가 탁자에 세운 망가진 등불을 가리켰다.
나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입에서 나올 질문을 몇 번 골랐다가 가장 쉬운 것을 먼저 물었다.
“성함도 못 여쭤봤습니다.”
그가 망치를 내려놓고 답했다.
“루크예요.”
“루크.”
“왜요, 이름보다 수선값이 먼저 궁금할 줄 알았는데.”
“이름을 이제야 알아서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망치를 들었다.
“루크 씨.”
“벌써 수선 맡길 거 생겼어요?”
“물어볼 게 생겼습니다. 그건 항구에서부터요.”
루크는 짐에서 단단히 싼 종이를 꺼냈다.
장영실의 답신이었다. 우리가 보낸 그림이 항구에 도착한 다음 날 길을 나섰고, 닷새 동안 배와 길을 갈아탔다고 했다.
“보낸 그림만 보고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내가 묻자 루크가 웃음을 거뒀다.
“같은 돛이 마른 땅에서도 보였다는 대목이 걸렸어요. 배가 어디에 갇혔는지 직접 듣고 싶었고요.”
그가 짚은 것은 우리가 나루에 도착한 날 보낸 물길 그림이었다. 나는 나흘 뒤 창고에서 본 부품의 그림을 꺼내 그 옆에 놓았다. 세 줄의 홈이었다.
루크의 손이 멈췄다.
“이것도 여기서 보셨어요?”
“저 창고에서요. 항구로 보낸 뒤에 찾은 겁니다.”
나는 호위와 부딪친 일, 연의 빗이 있던 자리까지 말했다. 루크는 그림을 가까이 당겼다.
“예전에 이 근처 통로를 손본 적이 있어요. 이 홈은 그때 쓰던 것과 닮았는데, 붙이는 방식이 달라졌네요.”
“그럼 다 아십니까?”
“닮은 물건 봤다고 다 알면 편하죠. 남의 집 문짝 하나 보고 방이 몇 개인지도 맞히고.”
그는 그림을 돌려놓았다.
“어디까지 같고 어디부터 바뀌었는지 보러 온 겁니다.”
장영실의 편지에는 항구에서 살펴본 길은 잠깐 겹쳤다가 떨어졌다고 적혀 있었다. 나루에서도 같은지 살펴 달라는 말이었다. 루크는 옆에 펼쳐 둔 부품 그림으로 손을 옮겨 홈 끝의 턱을 손톱으로 짚었다.
“이렇게 걸리면, 풀리려는 것도 붙들겠어요.”
나는 그림 속 쇠턱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던 갑판. 그것을 사라지지 못하게 붙들 수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 어디부터 봐야 합니까?”
내가 물었다.
루크는 등불의 못을 다 박고 나서 일어섰다.
“손으로 멈출 수 있는 것부터요. 못 멈출 것을 먼저 켜 놓고 이야기하면 서로 곤란하니까.”
그가 고친 등불은 주방 기둥에 걸렸다. 불은 작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나루지기는 루크를 보고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닷새 걷는 동안 몇 번 같은 생각을 했어요.”
두 사람이 원래 아는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점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함께 일하셨습니까?”
루크가 먼저 답했다.
“예전에 이 나루 통로를 고칠 때요. 지금의 상류 수문까지 함께 만든 것은 아닙니다.”
나루지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서쪽의 작은 시험 장치로 우리를 안내했다. 주방에서 걸어가면 닿는 거리였다. 옆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나 있고, 낮은 담 너머에 나무틀 둘과 줄을 감는 바퀴가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는 길과 장치 안의 좁은 틀은 떨어져 있었다.
루크는 현지 작업자를 불렀다. 나무틀을 실제로 여닫는 사람이었다. 그는 굵은 줄 하나를 발밑에서 끌어내며 설명했다.
“이 줄로 저쪽 틀을 움직입니다. 반대쪽과 맞춰서 놓아야 하고요.”
나는 줄을 잡아 봤다. 저편 틀에 연결된 작은 추 하나가 올라갔다. 다른 쪽 추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쪽만 놓으면요?”
내가 물었다.
작업자가 가운데에 짧은 나무쪽을 세웠다. 사람 대신 어디가 눌리는지 보는 것이었다. 내가 한쪽 줄을 조금 놓아 주자 반대쪽 틀이 안으로 기울었다. 나무쪽이 끼어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길이 조여요.”
루크가 말했다.
나는 얼른 줄을 당겼다. 작업자가 반대쪽을 맞추자 나무쪽이 풀렸다.
“사람이 있으면 한쪽만 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말을 확인하듯 하자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 붙어 있는지 알고 같이 풀어야죠. 이것보다 큰 물길이면 더더욱.”
나는 작은 나무쪽을 집었다. 옆면에 눌린 자국이 생겨 있었다.
정도전이 틀 뒤로 돌아가 작업자에게 물었다.
“저 옆으로 사람들이 걷고 있는데, 이것을 시험해도 그 길은 괜찮소?”
작업자는 연결하지 않은 줄 끝을 보여 줬다. 지금 움직인 것은 틀 두 개의 맞물림뿐이었다. 바깥 통로에 붙이는 부분은 빼놓았다고 했다.
루크가 그 부분을 손으로 확인한 뒤 나를 불렀다.
“내일도 이걸 연결하지 않습니다. 누가 중간에 만지면 먼저 멈추고요.”
나는 연결하지 않은 줄 끝을 따로 묶어 눈에 띄게 놓았다. 모른 채로 손을 대지 않도록 작업자에게도 자리 바꾸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매듭을 고쳐 줬다.
“이렇게 하면 당겨도 안 넘어갑니다.”
나는 그대로 다시 묶고 힘껏 당겼다. 이번에는 매듭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순신은 시험이 끝난 뒤 길을 오가는 사람을 한동안 봤다. 나무틀이 멈췄고, 그 옆으로 짐을 든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우리는 그들이 반대편에 닿는 것까지 보고 조작하던 자리에서 물러섰다.
나는 눌린 나무쪽을 주머니에 넣었다. 작업자는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으며 연이 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의자가 줄을 밟지 않도록 조금 물려 놓았다. 아직 그 빗을 어떻게 쓸지는 듣지 못했다.
연이 늦게 왔다.
나루지기는 그녀를 앉히고 작은 나무틀을 가리켰다. 빗과 집의 기억을 맞추면 옛 마당을 잠깐 볼 수 있다고 했다.
연은 빗을 내놓지 않았다.
“보는 것하고 돌아가는 건 다르다고 하셨죠?”
“그래. 내일은 보기만 하면 된다.”
“무엇도 건너가지 않는 거예요?”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루크는 가운데 틀의 간격을 확인했다. 물건을 넘기지 않고 모습만 비추는 부분은 따로 닫을 수 있었다. 양쪽으로 이어져 사람이 다니는 통로와는 달랐다.
그는 작업자와 함께 빈 틀을 열고 닫았다. 틀 가운데가 잠깐 흔들렸지만 건너편을 볼 만큼 밝아지지는 않았다. 다른 통로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 범위에서, 이 장치만 말하는 겁니다.”
루크가 나루지기와 나를 번갈아 봤다.
“여기서 닫힌다고 상류 것도 같은 줄 알면 안 돼요. 거기는 아직 못 봤습니다.”
나는 줄을 한 번 더 잡았다. 작업자가 어느 쪽으로 서야 손이 엇갈리지 않는지 알려 줬다. 루크가 잡아 주던 줄은 이제 그 사람과 내 손에 있었다.
“내일 닫는 건 저희가 맡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루지기가 내 손의 줄을 잡았다.
“익숙한 사람이 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럼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여는 쪽과 닫는 쪽은 나눠 맡겠습니다.”
그의 손이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연이 우리 사이를 봤다.
“제가 그만 보고 싶으면 닫을 수 있어야 해요.”
나루지기가 딸을 돌아봤다. 나는 당기지 않고 기다렸다. 잠시 뒤 줄의 무게가 온전히 내 손으로 넘어왔다.
연이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게요.”
“예.”
우리는 해가 충분히 오른 다음, 짧게 한 번만 열기로 했다. 바리데기는 연 옆에 있고, 나는 작업자와 차단 줄을 맡는다. 나는 어느 쪽을 당겨야 닫히는지 다시 손으로 짚었다.
나도 보고 싶었다.
지나간 날이 눈앞에 나타난다는 말을 믿기만 하고 있던 것과, 내일 본다는 것은 달랐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루크와 잠깐 둘이 걸었다.
“예전에 고치셨다는 통로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면 마음이 안 좋으시겠습니다.”
그가 말없이 걷다가 신발 끝의 흙을 털었다.
“마음이 좋다고 하기는 어렵죠.”
“처음부터 다 아셨던 건 아니고요?”
나는 묻고 나서 조금 무례했나 싶었다. 그래도 묻지 않으면 그 생각을 혼자 키울 것 같았다.
루크는 화내지 않았다.
“사람이 다칠 걸 알았으면 먼저 말했겠죠. 모르는 건 아는 척 안 할 겁니다. 아는 걸 일부러 아끼지도 않고요.”
나는 주머니에서 나무쪽을 꺼내 눌린 자국을 문질렀다. 루크가 그것을 봤다.
“그건 기념품으로 가져가게요?”
“잊지 않으려고요.”
“좋네요. 수선은 제가 해도, 내일 줄 잡는 손은 길동 씨 손이니까.”
나는 나무쪽을 주머니에 넣었다.
돌아왔을 때 연은 주방 앞에서 빗의 손잡이를 만지고 있었다. 나는 내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려다 멈췄다. 그녀는 이미 몇 번 생각했을 것이다.
연이 먼저 말했다.
“그 마당을 좀 보고 싶어요.”
그녀가 나를 보며 웃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 하시는 것 말고, 제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은 빗을 품에 넣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내일 잡을 줄이 있는 쪽을 돌아본 뒤 잠자리로 향했다.
그날 밤에는 잠이 늦게 왔다.
손을 펴면 줄이 당기던 감각이 남아 있었다. 눈을 감으면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당이 떠올랐다. 그곳에 연이 서 있을 모습을 상상하다가, 아직 누구도 건너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다시 확인했다.
내일 우리가 여는 것은 길이 아니라 창이었다.
그런데 나루지기는 줄을 넘기기 싫어했다. 연이 그만 보겠다고 해도 그럴까.
나는 잠자리 옆의 종이를 당겨 ‘연이 그만두면 닫는다’고 적었다. 아침에 다른 말로 바뀌지 않도록, 모두 보는 앞에서 다시 말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