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로 건너간 것은 빈 물통이었다.
이순신은 사람을 태우기 전에 짐부터 옮겨 작은 배가 어느 쪽으로 밀리는지 봤다. 사공이 물통을 내리고 돌아왔을 때, 해가 막 갈대 끝에 걸렸다.
어제보다 물이 높았다. 밤새 둔덕을 살핀 병사가 줄의 매듭을 보여 주었다. 이순신은 그 자리에 손가락을 대고 우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하세.”
이순신은 물새호와 둔덕 사이에 걸어 뒀던 널판을 거둬, 둔덕과 작은 배 사이에 놓았다.
윤석이 먼저 일어났다.
“저는 마지막에 타겠습니다. 이 친구가 걸음을 잘 못 옮깁니다.”
누워 있던 동료가 손을 저었다. 그러나 혼자 일어나려다 다시 앉았다. 윤석이 그의 신발을 가져다 놓았다.
나는 윤석이 설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럼 같이 내려갑시다.”
어제는 찾아왔다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오늘은 발을 어디에 놓을지부터 알려 줄 수 있었다.
널판 아래로 물이 흘렀다. 나는 선원의 팔을 어깨에 걸고 가운데를 디뎠다. 뒤에서는 윤석이 허리를 받쳤다. 작은 배에서 사공과 병사가 두 손을 벌렸다.
발 하나가 배 바닥에 닿았다. 다음 발까지 들어가자 이순신이 배를 밀어냈다.
우리는 배가 군영 쪽 돌 둔덕에 붙는 것을 끝까지 봤다. 바리데기가 일어서서 손을 들었다. 양규의 병사들이 선원을 받아 옮겼다.
첫 사람이 나갔다.
윤석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빈 물병과 천을 차례로 묶었다.
배가 두 번째로 돌아왔을 때 물새호 안에서 둔한 소리가 났다.
난간에 앉아 있던 선원이 작은 배에 몸을 낮췄다. 윤석은 그의 짐을 건네주고 뒤로 물러섰다. 배가 떠난 뒤에도 우리는 기운 선체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잠겨 있던 오른쪽 선체가 조금 더 누웠다. 난간에 걸린 밧줄이 팽팽해졌다. 윤석이 반사적으로 물새호를 돌아봤다.
“짐칸에 아직…….”
“들어가지 마십시오.”
내 말이 생각보다 날카롭게 나왔다.
윤석이 멈췄다.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말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 주시면 적어 두겠습니다. 지금은 배 안으로 못 들어갑니다.”
윤석의 손이 빈 허공에서 내려왔다. 나는 종이를 폈다. 그가 말해 주는 짐의 이름을 적는 동안에도 선체 안에서 나무가 갈라졌다.
“배를 아낀 사람은 배가 위험해지는 소리를 알지.”
이순신이 말했다.
“지금 저 소리는 더 타라는 소리가 아니네.”
윤석은 눈을 감았다 떴다. 품에 들어 있는 나무 표지와 접힌 짐 목록을 확인했다. 배가 돌아오자 첫 선원을 부축했던 병사가 남은 물자를 싣고 윤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마지막 줄을 걷었다. 물새호를 묶은 줄이 아니라 우리가 가져온 길잡이 줄이었다. 물살이 바뀌어 그것까지 팽팽해지기 전에 풀어야 했다.
윤석을 내리고 돌아온 배에 남은 병사와 이순신이 올랐다. 내가 뒤따르자 작은 배가 한쪽으로 숙었다. 이순신이 노를 눌렀다.
“앉게.”
나는 병사 옆에 털썩 앉았다. 그제야 뒤에 있던 배가 멀어졌다.
돛대는 여전히 보였다. 푸른 천이 흰 돛 아래쪽에 조용히 매달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사람을 찾았으니 반가워해야 할 텐데, 돌아갈 때의 돛은 처음과 다르게 보였다.
둔덕에 먼저 내린 윤석도 그쪽을 보고 있었다. 우리 배가 가까워지자 그가 손을 들었다.
앞에서 양규가 소리쳤다. 배를 받을 사람들이 물속에 발을 디뎠다. 바닥이 단단한 쪽까지 배가 끌려 올라갔다.
배에서 내리자 윤석이 다가왔다.
그는 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 무릎을 조금 굽힌 채 발밑을 봤다. 내가 팔을 잡으려 하자 괜찮다는 듯 손을 들었다.
“안 움직이네요.”
그가 말했다.
“예. 여기는 땅입니다.”
그 말에 윤석이 웃었다. 웃다가 제 무릎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
자루는 밥을 먹은 뒤에 펼쳤다.
자청비가 바닥에 놓자 윤석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바깥의 얼룩을 보고, 뒤집힌 안쪽의 실을 보았다.
“이걸 어디서…….”
그는 푸른 실로 반달처럼 덧댄 곳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집사람이 꿰맨 겁니다. 이쪽이 잘 벌어져서.”
우리가 항구에서 들은 말을 전했다. 다른 배의 갑판에서 밧줄 옆에 놓여 있었다. 선원이 주워 곡식 자루 위에 올렸다. 불이 나기 전이었다. 그 배는 새 나루를 떠난 뒤 다른 배를 댄 적이 없었다.
윤석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배를 댄 적 없습니다. 자루는 물이 들 때 없어졌어요.”
나는 그의 짐 목록 옆에 종이를 폈다.
“그때 어느 쪽으로 기울었습니까?”
그가 오른손을 낮췄다.
“이쪽입니다. 바닥에 있던 것들이 선실 문턱으로 몰렸고요.”
“자루도요?”
“예. 물 위에 뜬 자루를 잡으려는데 동료가 미끄러져서 그 사람부터 붙들었습니다.”
그 뒤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바깥에서 짧은 널판 두 장을 가져왔다. 하나를 책상 위에 눕히고 하나는 기울였다.
“이걸 물새호라 치겠습니다.”
자청비가 접은 천 조각을 기운 널판에 올렸다. 천이 낮은 쪽으로 미끄러졌다.
나는 평평한 널판을 그 끝에 잠깐 맞댔다가 뺐다.
천만 건너편에 남았다.
윤석이 두 널판을 번갈아 봤다.
“배가 붙은 게 아니라…….”
“갑판의 낮은 부분만 잠깐 이어졌다면요. 그제 갈대밭에서 저희 앞에 나타났던 널판처럼.”
이순신이 자루가 놓여 있었다는 자리를 짚었다.
“그쪽 배의 밧줄 옆이 이 배에서는 물이 흘러내리는 끝이었을 수 있겠군.”
윤석이 기운 널판을 들었다. 자청비가 평평한 쪽에 남은 천을 짚었다.
“이러면 윤석 씨는 없어졌다고 하고, 저쪽 선원은 갑판에서 주웠다고 하겠네요.”
나는 두 널판 사이를 벌렸다. 배를 댄 적 없다는 말까지 맞았다.
“그러면 먼저 항구에 도착한 것도 설명이 되겠소.”
정도전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이 난 까닭이나 내가 배에 오른 일까지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루가 건너간 길은 그려졌다. 이번에는 그림 속에 윤석이 돌아갈 길도 함께 있었다.
윤석은 자루를 접었다. 한동안 손에 쥐고 있다가 자청비에게 돌려주려 했다.
“이건 주인께서 가져가셔야지요.”
그녀가 밀어 놓았다.
“덕분에 찾았으니 일은 다 했어요.”
윤석은 자루를 자기 짐 안쪽에 넣었다. 돌아가는 길에, 잃어버렸던 물건 하나를 되찾았다.
오후에는 편지가 도착했다.
항구에서 온 사공이 군영까지 가져다준 답신이었다. 자청비가 종이를 펴더니 날짜를 짚었다. 출발하던 날 보낸 부탁에 대한 답이었다. 항구의 상인은 돈을 받았고, 씨앗을 열하루 더 맡아 주겠다고 했다.
“돌아갈 때까지는 괜찮겠습니까?”
내가 묻자 자청비는 윤석이 가져온 표지를 봤다.
“그걸 어디서 받았는지 보러 가면 모자랄 수도 있어요.”
표지의 화살표 아래에는 구호 나루를 나타내는 작은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양규는 그 나루가 여기서 정상 길로 사흘쯤 걸리는 곳이라고 했다.
정도전은 윤석이 항구로 돌아갈 길을 알아보고 왔다. 양규가 붙여 준 병사들과 함께 오늘 출발하면, 항구에는 이틀 뒤 닿을 수 있었다. 길이 제대로 이어지는 쪽으로 돌아가니 물새호가 오려던 바닷길과는 달랐다.
윤석은 집으로 보낼 짐을 한데 묶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우리도 같이 돌아가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찾았다. 살아 있었다. 가족에게 데려갈 배와 길도 정했다. 처음 약속한 일은 여기서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나무 표지를 손바닥에 올렸다.
“이것을 따라갔다고 하셨지요.”
윤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호 나루에서 위험한 물길을 피하는 표지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해 준 사람도 여기에 갇힐 줄 알았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윤석은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거기서 물과 먹을 것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저희를 해칠 생각이었다고는…… 잘 모르겠어요.”
나는 화살표를 내려다봤다. 이걸 세운 사람은 물새호가 어디에 멈췄는지 알고나 있을까. 우리가 떠나면 다음 배도 이쪽으로 들어올 것이다.
“저는 가 보겠습니다.”
네 사람이 나를 봤다.
“다음 배가 이걸 보고 들어오기 전에, 어디가 잘못됐는지는 알아야겠습니다.”
바리데기가 표지 옆에 자기 손을 놓았다.
“저도요.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이걸 믿고 또 데려갈 수 있잖아요. 표지를 세운 분께 직접 알려야겠어요.”
정도전이 나루까지의 지도를 당겼다. 이순신은 우리가 탄 배와 물새호가 길을 잃은 자리를 함께 표시하고, 그 사이에 다른 표지도 있는지 양규에게 물었다.
자청비는 돈주머니를 열어 남은 것을 세었다.
“다음 씨앗을 받으러 갈 때도 이 길을 써야 해요. 어디가 잘못됐는지 저도 볼래요.”
그녀가 윤석에게 작은 돈주머니와 새 부탁을 맡겼다. 씨앗을 더 오래 보관하고 돌봐 달라는 말이었다.
“답은 구호 나루로 보내 달라고 전해 주세요. 저희가 거기로 갈 테니까요.”
“집에 가는 길입니다. 꼭 전하겠습니다.”
윤석이 종이를 자루 안쪽에 넣었다. 나는 이순신 옆으로 가 지도에 표시된 배편을 함께 봤다. 돌아갈 사람과 더 가 볼 사람의 짐이 나뉘었다.
떠나기 전 윤석이 내게 다가왔다.
“집사람에게 제가 직접 말하겠습니다. 기다리느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는 따님에게 무슨 말을 할지도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 말은 돌아가서 두 사람이 나눌 것이었다.
“다음에는 항구에서 뵙지요.”
내가 말하자 윤석이 제대로 웃었다.
우리는 그날 늦은 오후 구호 나루 쪽으로 출발했다. 윤석도 곧 병사들과 함께 집으로 떠날 참이었다. 그는 천막 앞에 서서 우리가 길모퉁이를 돌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나는 뒤돌아 손을 들었다가 앞을 봤다.
길모퉁이에서 이순신이 걸음을 늦췄다.
“잘못된 표지 하나 때문에 사흘을 더 가는 건가?”
나는 손안의 나무쪽을 뒤집었다. 조금 전까지 윤석의 손에 있던 것이었다.
“저도 사람을 데려가 살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지를 보면 저부터 따라갔을 겁니다.”
“그럴듯해서?”
“돌아갈 곳을 만들어 준다는 말이 좋으니까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알아본 것 같아 쓴웃음이 났다. 이순신은 웃지 않았다.
“그럼 가서 보세. 정말 그런 곳인지.”
나는 표지를 챙겼다. 잘못됐다면 고칠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 나루가 믿을 만하다면, 이번에는 내가 머물 곳을 찾을지도 몰랐다.